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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시가 병사들의 이동수단?
    쉼 터/자동차정보 2009. 8. 31. 09:38

     

     

    예전에 “하루 동안 노란택시 세 대를 보면 재수가 좋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미신의 일종이었지만 택시와 관련된 설(設)로는

    유일한 게 아니었나 싶다. 우리의 생활과 밀접히 연관돼 있는 교통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그것과 관련해 알려진 이야기는

    없는 것이다. 택시는 자동차의 발달과 궤를 같이할 정도로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최초로 ‘택시’라는 개념이 정립된 것은

     

    1891년. 빌헬름 브룬이란 사람이 발명한 요금계산기 ‘택시미터(Taximeter)’가 등장하면서 부터다. 당시 택시의 등장은 사람

    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마차에 비해 승차감이 좋으면서 냄새도 나지 않는 데다 운전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그 후

    사람들은 그를 두고 ‘거리의 자동차’란 뜻의 ‘리무진 드빌(Limou- sine Deville)’이라 부르기도 했다. 1898년에는 기름냄새가

     

    심하고 엔진소리가 요란한 반면 더욱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는 휘발유엔진 택시가 등장하게 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벤트

    자동차회사에 의해서다. 2기통 9마력 엔진을 얹고 시속 40km로 달렸으니, 사실 요즘 사람들이었다면 속 터져할 정도의

    느린 속도다. 우리나라 택시의 출발점은 두 시기로 보고 있는데, 하나는 자동차가 들어온 지 9년만인 1912년 4월 이봉래라는

     

    사람이 일본인 2명과 함께 시간제로 시작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1921년 일본인 노무라 겐조가 <경성 택시회사>를 세운

    것이다. 이때만 해도 서울을 한 바퀴 도는 데는 3원, 시간당 대절을 할 시에는 6원의 요금이 책정됐다고 하는데, 당시 쌀 한

    가마의 가격이 6~7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일반 서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높은 가격이었던 셈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택시가 병사들의 이동수단이 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한 승용 지프가 등장하지 않았을 때라, 간혹 양산

    승용차를 전쟁에 투입하기도 했으나 험한 전쟁터에서 내구성이 떨어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그러던 중 1914년

    9월, 마르느 전선에서 일반 택시가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파리를 향해 진격하는 독일군에 맞설 파리 제103 보병 연대

     

    병사 6천여 명을 택시 600대로 순식간에 수송한 것. 이로 인해 프랑스군은 성공적으로 독일군을 저지할 수 있었다. 현재도

    택시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밴 택시가 등장했으며, 미터기뿐만 아니라 영수증 기계며, 카드 계산기도 장착됐다. 살아오면서

    봐왔던 택시의 변화를 가만히 떠올려 보면 앞으로는 택시를 조금 더 흥미로운 마음으로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기아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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