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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의 이곳저곳
    일탈/가보고 싶은 곳 2009. 8. 27. 21:56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끊어질듯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 비 그치면 한여름 무더위도 그 맹렬

    하던 기세를 한풀 꺾고 다소 사그러들겠지요. 들녘의 벼는 더더욱 누렇게 익어갈 터이고 일상을 살

    아내는 보통 사람들의 삶도 조금쯤은 더 분주해질 터입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참 묘합니다.

     

    비가 주는 서정성은 언제 어디서나 늘 비슷하게 마련일 텐데, 어쩐지 정선군, 그것도 고한이나 사북

    에서 맞는 비는 가슴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니 말입니다. 아마도 그 지방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전체적으로 무채색 계열, 그중에서도 ‘먹’에 가까운 컬러 톤은

     

    회색으로 추적되는 비와 어우러지며 음울함의 극치를 연출해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게 봐줄려

    고 해도 고한에는, 또 사북에는 회한으로 가득한 절망의 운무만이 상기도 방향성을 상실한 채 부유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시커먼 아가리만 벌린 채 허물어져가고 있는 폐

     

    광들과, 그로 인해 비어가고 있는 사택의 황량함을 연상한 탓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한에

    닿기 전까지의, 그야말로 선입견에 불과했습니다. 실제로 비가 오고 있음에도, 시간이 이르지 않음

    에도 불구하고 고한에는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이상한 열기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고한역을 중심

     

    으로 형성된 번화가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도 네온사인들이 이전의 음산함을 밀어내며 명멸하고

     있었고, 공영주차장에는 차를 댈만한 공간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언뜻언뜻 스치는 사람들에게서

    도 더이상 2년 전에 보았던 상실의 표정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카지노가 들어서는 공사가 한창

     

    이라는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 정선에 부는 변화의 새바람

    그랬습니다. 고한은, 정선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혹자들은 그 변화를 못마땅해 하기도

    지만, 고한읍내에서 밥도 팔고 고기도 구워 내는 수정식당의 강기술(여, 51세) 씨 같은 이는 물정

    르는 촌놈들의 비아냥 쯤으로 치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도 아니면, 온 산하가 탄가루로 뒤덮인

     

     이 척박한 땅에서 도대체 무얼 파먹고 살려는지 모르겠다는 얘기였습니다. 더러, 까짓 카지노는 있

     놈들의 돈 잔치가 될 게 뻔하고 자신 같은 사람들에게는 건더기는 물론 국물도 돌아올 게 없다고,

    그저 인심만 사나워질 뿐이라고 언성을 높이지만 어디 카지노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매양 호텔에서 묵

     

    으며 비싼 밥만 먹겠냐는 게 그이의 낙관론이었지요. 아무려나, 결과야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고한

    을 중심으로 정선군 전체에는 분명 변화의 새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이제 10월이면 카지노 운영회

    사인 ‘강원랜드’에서 지은 국내 최초 최대의 내국인 출입 가능 카지노가 개장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때까지는 우선 ‘스몰카지노’(슬롯머신 500대, 테이블 게임 30대, 200실 규모의 호텔 및 기타 문화

    이벤트 시설 등)만이 문을 열지만 그것들이 정선으로 몰리는 타지 사람들의 발길을 재촉하고 붙잡아

     둘 것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게다가 2002년이 되어 메인카지노 및 골프장, 스키장 같은 부대

     

    시설이 완비되면 고한과 사북은 명실상부한 카지노 위락단지로 기능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지역

    주민들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요. 정선의 옛이름은 무릉도원 사실, 카지노가 아니더라도

     정선군은 근래들어 아주 맞춤한 여름 휴양지로 알려져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변모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야 첩첩으로 둘러싸인 험산들로 인해 ‘정선으로 들어오려면 생명보험을 들어

    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을 정도로 들고남이 어려웠지만, 산마루를 깎고 터널도 새로 뚫고

    하는 바람에 험로가 오히려 각광받는 드라이브 코스가 되었습니다. ‘하늘이 세 뼘밖에 되지 않는다’

     

    거나, ‘앞산과 뒷산을 이어서 빨래줄을 맬 수 있다’는 말은 더 이상 푸념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정선을 찾는 이유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정선 제일 비경은 역시 기암과 맑고 깨끗한

    물이 어우러진 동면 화암리 일대의 소금강입니다. 마치 선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이곳의 절경 앞에서 사람들은 작아지는 자신의 존재를 느껴야만 합니다. 물론 화암약수나 화암동굴

    같은 주변 볼거리도 제법 있어 여름이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지요. 비오는 새벽에 오른 정암사는

     또 어떻습니까. 보물 410호로 지정된 7층 모전석탑인 수마노탑의 웅장함이나 적멸보궁의 경건함은

    산사를 찾는 이들의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어줍니다.

     

     

    ♣ 심금을 울리는 사공의 아라리

    정선하면 역시 아우라지와 정선아라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송천과 골지천이 아우러지며 조양강으

    로 흘러든다고 해서 이름 붙은 북면 여량리의 아우라지 나루는 비가 오는 중에도 나루에 얽힌 처녀

    총각의 슬픈 사연을 더듬어보려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여량리와 유천리를 잇는 줄배 사공은 가끔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 주게/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

    /사시장철 님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로 이어지는 정선 아라리의 한 가락을 구슬프게 읊어대며

    젊은 연인들의 심금을 울리더군요. 어디 정선땅에서 볼 게 그것뿐입니까. 청량리에서 출발하여 강

     

    릉으로 가는 태백선을 타고 가다 증산역에서 다시 구절리행 정선선을 갈아타면 사람들은 곧장 정

    선읍내로 오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관광열차를 운행하며 더욱 유명해진 정선 5일장이 열리는데,

    산골의 오염 안된 고랭지 채소는 물론 각종 약초와 산나물 등속이 질펀하게 쏟아져 도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 하곤 합니다. 어쩌면 정선은 지금 극심한 변화의 몸살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때 이 지방 활력의 원천이었고 풍요의 표상이기도 했던 음울한 먹빛들을 씻어내

    고 새로운 희망을 던져줄 변화의 일단을 찾으려는 몸부림이 느껴집니다. 그 격동의 순간을 재촉하

     

    기라도 하는 듯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시꺼먼 무연탄의 탄때를 지워버리고 희망의 새싹

    을 틔워보려는 듯.

                                                                                                                               기아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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