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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여주
    일탈/가보고 싶은 곳 2009. 8. 29. 16:19

     

     

    ♣ 아! 가을이다

    가을은, "그냥 가을이 왔다" 라고만 할 수 없게 한다. 그 앞에 감탄사를 덧붙이지 않고서는 맞기가 힘든 묘한 계절이다.

    무언가 거두어들일 것이 있는 사람은 안도의 감탄사를,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는 사람은 허무의 감탄사를 내뱉을 것이다.

    그래서 가을은 가장 풍성한 계절이면서도 가장 쓸쓸한 계절이다. 산능선에 붉은 물이 살짝 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문득문득 먼 시선을 던진다. 높고 구름없는 짙푸른 하늘을 향해, 벼가 고개 숙인 황금빛 들녘을 향해, 코끝을 건드리는

    과실나무의 단 내음를 향해, 여름과는 다른 느낌으로 살랑이는 바람을 향해, 향수로 가득한 고향마을을 향해, 그리

    자신만의 고독과 어떤 그리움을 향해.... 이렇듯 가을은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세상 사는 섭리와 이치를 깨닫게 한다.

     

    어디 그뿐인가. 찬이슬 머금은 아침이 그러하고, 잠 못 이루게 하는 풀벌레 소리가 그러하고, 흐드러진 들꽃이 그러하고,

    한적한 강가가 그러하다.

     

    아! 정말 가을은 가을이다. 군더더기에 불과한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을 보니 말이다. 누구나 여행길에 오르면

    우선 잘 알려진 곳부터 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간혹은 그러한 것들을 뒤로하고 눈길 머무는 곳으로, 발길 닿는 대로 가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을 남기는 여행이 될 듯 싶다. 남한강을 따라 형성된 여주의 문화재를 나중으로 미루고 안으로 숨은

     

    마을 강천리와 굴암리를 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냥 마을을 따라 걸어 갔다. 나지막하고 허름한 담장 너머로 후드득

    열매를 맺은 대추나무, 헛간인 듯한 낮은 지붕을 올라 타고 넉넉한 폼새로 앉아 있는 늙은 호박, 그 아래 좁은 도랑 전체로

    피어난 소박한 들꽃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가을 풍경을 강천리 마을 어귀에서 마주했을 때 여행객은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주인은 어디 갔는지 없고, 개 짖는 소리만 들리는 그 집 담장 밑에서 한동안 서성이며 딴 대추로 어느새 양쪽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마을인심이 후해 보였던 탓일까.

     

     

    지나가는 마을 사람을 보면서 연신 대추를 따고, 오도독 오도독 깨어 물기까지 했으니. 따지고보면 도둑질(?)이 분명하거늘

    말이다. 강천의 모든 것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처럼 여행객의 배짱을 두둑하게 하는 인심 때문이었던 듯 싶다.

    강천은 강천1리와 강천2리로 나뉘어진다. 이 두 갈래의 길 중 여행객이 택한 곳은 오른편으로 길이 나 있는 강천1리다.

     

    아름다운 남한강을 바라다보고 있는 마을로 아주 평화로운 곳이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난 이유도 있지만 둥글게 형성된

    마을 느낌이 또한 그렇다. 야트막한 산줄기를 따라 작은 논과 밭이 이어져 있고, 사람 냄새가 나는 집과 집 사이의 담장은

    인정이 오가기에 알맞게 낮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객의 마음을 즐겁게 한 것은 여기저기 풍성하게 열린 대추, 밤, 감 등

     

    결실을 상징하는 과실들이다. 울긋불긋한 색을 띤 대추나무는 마을 어귀에서 이미 보았던 터라 눈길은 톡톡 소리를 내며

    열매를 떨어뜨리는 밤나무에 쏠렸다. 영글대로 영근 밤들은 하나같이 아래로 향해 벌어져 있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처럼 자연도 세상의 질서와 순리를 따르고 있음이었다. 울긋불긋한 색을 띤 대추나무는 마을 어귀에서 이미 보았던

     

    터라 눈길은 톡톡 소리를 내며 열매를 떨어뜨리는 밤나무에 쏠렸다. 영글대로 영근 밤들은 하나같이 아래로 향해 벌어져

    있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처럼 자연도 세상의 질서와 순리를 따르고 있음이었다. 비단 밤뿐이랴. 붉게 익어

    가는 감나무, 곳곳에 심어진 배와 사과나무 등 자연에 속하는 모든 것들이 그러한 것을. 그 순간 여행객이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각설하고, 여행객 하나는 버젓이 주인있는 밤을

    털고, 또다른 여행객은 그 밤을 주워 가방에 가득 담았다. 참으로 말도 안되는 짓거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은 내심 마을 어른이 ‘이놈, 무슨 짓이냐’ 하고 소리라도 지른다면 더욱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터인데, 하는 철없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처럼 마치 내 고향인 듯 느릿한 걸음으로 한바퀴 돌며 마음을 정리하기에 좋은 곳, 강천1리다.

     

    ♣ ‘톡톡톡’ 가을이 영그는 마을

    저문 가을 강에서 강촌1리는 남한강 줄기를 끼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산과 강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남한강변을 따라 흐르는 산자락과 황금빛 모래밭으로 인해 한여름에는 강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이곳을 강천유원지라고도 부르지만 많은 인파가 몰리지는 않는다. 대하드라마 ‘왕건’의 촬영장소이기도 해서 널리

     

    알려져 있어 그럴 법도 한데 말이다. 아마도 안으로 돌아앉은 모양새 때문인 듯 싶다. 참여행을 즐기는 여행객들에게는 반가운

    곳이 아닐 수 없다. 이 남한강 줄기는 작게 세 개의 강으로 나누어져 있다. 초입에 호젓하게 흐르는 샛강이 먼저 그 하나다.

    샛강과 샛강을 잇는 작은 다리 난간에 앉아 있노라면 조금은 듬성듬성한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드리우고, 곱고 하얀 모래가

     

    풋풋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때 사람의 마음이 참 맑아짐을 느낄 수가 있다. 예쁜 강가에서 사랑을 노래하고 싶은 이들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두 번째 강은 강천 마을 전체를 끼고 도는 남한강 줄기다. 억새풀과 들꽃이 만발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이곳은 특히 낚시 마니아들 발길이 잦다. 물이 적당하기 때문이다. 돌돌거리는 여울목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노라면

     

    은빛 비늘이 여기저기서 톡톡 뛰어 오르는 것이 보인다. 마침 그곳에서 낚시를 드리우는 사람의 모습은 저문 강과 노을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완성시킨다. 한적한 강가에서 인생을 생각하고픈 여행객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세 번째 강은 마치

    한 점 섬과 호수같다. 세월과 강물에 닳고 닳아 둥글둥글해진 돌밭을 곁에 둔 이 강은 사방으로 흐르지 않고 한 곳에 고여

     

    있어 강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물이 많은 날에는 다른 강과 이어져 한없이 드넓은 강을 이룬다. 듬성듬성 섬이

    떠있는 바다가 그리운 이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이처럼 강천 1리의 저문 가을 강들은 나름대로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 어느 강 앞에서든 잠시 복닥거리는 세상을 뒤로 할 수 있어 좋다.

                                                                                                                                  기아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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