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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장의 시한 자/한시(한국) 2009. 4. 8. 08:39
검으면 희다 하고 희면 검다 하네
검거나 희거나 올타 하리 젼혀 업다
찰하로 귀 막고 눈 감아 듯도 보도 말리라
~김수장(金壽長;1699~1771)~
<해설>
검으면 희다고 하고 희면 검다고 한다. 제멋대로 정하고서 하는
말이니 검다고 하거나 희다고 하거나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차라리 귀도 막고 눈도 막아서 듣지도 보지도 않는 게 마음 편하다.
◈ 배경
김수장은 영조 때의 유명한 창곡가이고, 자는 자평(子平)이며 호는 노가재(老歌齋)
이다. 숙종 16년에 태어났다. 집이 한미(寒微)하여 벼슬을 기성서리(騎省書吏)에 그
쳤으나 당시 시조와 노래로 유명했다. 그리하여 그의 가요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어
당시 시조가 성행되었던 것이다. 노경에 이르러 자기 집을 ‘노가재’라 하고서 남파
김천택, 김시모, 김우규 등과 같이 시조를 창작하며 세월을 보냈다. 작품이 많으며
장단가 합하여 149수나 전한다. 정조대왕은 영조 30년 세손에 책봉되고 38년 아버
지 사도세자가 돌아간 뒤 효장세자(孝章世子)의 후사가 되었으며 영조 51년(1775)
늙은 영조를 대신하여 국정을 다스렸고. 이듬해 영조가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이리하여 벽파가 추풍낙엽처럼 몰락하고 시파를 등용했다. 특히 홍국영(1749~17
81)을 중용했는데 그는 자를 덕로(德老)라고 한다. 25세에 등과하여 정조의 외척
으로서 세도가 당당했다. 그러나 홍국영 역시 그에 대한 임금의 신임을 빙자하여
횡포를 자행하고 세력 유지를 위해 엉뚱한 생각까지 갖데 되자 1880년 추방되어
죽음을 당했으며 홍씨의 세도정치는 이로서 완전히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