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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붕익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8. 08:30

    나라히 太平이라 武臣을 바라시니

    날갓튼 英雄은 北塞에 다 늙거다

    아마도 爲國丹忠은 나쁜인가 하노라

                      ~장붕익(張鵬翼;?~1735)~

    <해설>

    나라가 태평하여 무관을 돌보시지 않으시니 나와 같은 무신은 북쪽 변경

    요새에서 하릴없이 늙어만 가는구나, 그러나 어쩌면 나라를 위한 붉은

    마음 그대로인 충성심을 가진 영걸은 나뿐인 것으로 믿는다.


    ◈ 배경

    장붕익은 본관이 인동으로서 자는 운거(雲擧)인데 영조 때의 무장이다. 숙종 25년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을 거쳐 어영대장, 한성판윤, 훈련대장을 지냈으며 형조판

    서에 올랐다. 일찍이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는 부총관으로서 적장 이배(李

     

    培)를 잡아 죽인 일이 있었다. 영조대왕은 재위 52년으로 변란이 또한 없지 않아

    있었으나 문운(文運)이 크게 일어 실학파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당시의 실학은 주

    로 청나라의 자극을 받아서인데 이때 청나라는 옹정, 건융 등 성군이랄 불리는 황

     

    제가 나타나 서양문명을 받아들이고 학문을 장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지원(朴趾

    源;1737~1805)은 본관이 반남으로서 자를 중미(仲美)라 했고 호는 연암(燕巖)이다.

    그는 조실부모하여 어렸을 때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고 또한 공부에도 뜻이 없었

     

    다. 16세 때 장가를 들었는데 그의 처숙(妻叔)되는 사람이 “선비의 자재로서 어찌

    학무늘 배우려 하지 않는가!“하고 훈계를 하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열심히 학문

    에 힘을 썼다고 한다. 3년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고금의 서적을 독파하였는데

     

    마침내 대성(大成)할 수가 있었다. 그는 벼슬 길에도 나가 안의현감, 연천(淵川)

    군수 등을 역임하고 청나라의 도읍 북경에도 다녀왔다. 이리하여 그의 주변 또는

    문하에 쟁쟁한 당대의 학자들이 모여들었는데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齋家), 이서구(李書九) 등이 그들이었다. 연암은 나이 늙으매 벼슬을

    사임하고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한문소설인 양반전, 허생전 등이 있고 열

    일기(熱河日記) 11권은 청나라에 있을 때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책이다. 또한

    농사지식을 자세히 해설한 과농소초(課農少抄)를 지어 영조께 바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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