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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서우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8. 08:27

    文章을 하쟈 하니 人生識字 憂患始오

    孔孟을 배호려 하니 道若登天 不可及이로다

    이내몸 쓸 대 업스니 聖代農圃 되오리다

                           ~안서우(安瑞羽;1664~1735)~

    <해설>

    글을 배우자니 인생에서 글을 안다는 것은 곧 근심과 걱정이 시작되는

    것이고, 공자와 맹자의 도를 깨치자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오르는 것과

    같아 미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몸은 아무 쓸모가 없으므로 태평성대

    성군께서 다스리는 세상에 농사나 지어볼까 하노라.


    ◈ 배경

    안서우는 자는 복거(鳳擧)이고 호는 양기재(兩棄齋)이다 울산부사를 지냈으며 무

    주의 경치를 사랑하여 그곳을 종생(終生)의 땅으로 삼았다. 영조 때의 사람으로

    암행어사로서 유명한 이가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이다. 박문수는

     

    본관이 고령으로서 자는 성보(成甫)이고 경종 3년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영조 6년

    영남안찰사와 함경감찰사를 지냈다. 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키자

    도순무사 오명항(吳命恒)을 도와 이를 토평했다. 이인좌는 본관이 광주로서 유명한

     

    영상 이준경(李浚慶)의 후손이었다. 영조께서 즉위하고 ‘신임사화‘를 일으킨 김일경

    과 목호룡(睦虎龍) 등을 무고죄로 주살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노론이 일파가 그

    를 주장(主將)으로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는 정희량(鄭希亮)과 더불어

     

    군사를 일으켜 청주를 함락시키고 병사 이봉상(李鳳祥), 영장(營將) 남정년(南征年)

    등을 잡아 죽이고서 계속 진격했는데 안성 싸움에서 오명항에게 대패하여 사로 잡

    혔던 것이다. 박문수는 이 싸움에서 공을 세워 영성군(靈城君)이 되어서 요직을 역

     

    임하였던 것이다. 영조 25년 박문수는 호조판서로 있었는데 탁지정례(度支定例) 

    다시 말해서 도량형의 제도를 실시하였다. 암행어사로 일화가 너무나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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