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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순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8. 08:34

    내집이 白鶴山中 날 차즐 이 뉘 이슬이

    入我室者 淸風이오 對我飮者 明月이라

    庭畔에 鶴徘徊한이 긔 벗인가 하노라

                         ~윤순(尹淳;1680~1741)~

    <해설>

    내 집은 백학산 속 깊은 곳에 있거니와 찾아줄 사람이 뉘 있겠는가,

    오직 내방에 들어와 주는 이는 맑은 바람이요, 나하고 함께 술을 마실

    벗은 저 밝은 달 뿐이다. 또 뜰 가에 학이 내려 거닐고 있거니와 그도

    내 벗인가 하노라.


    ◈ 배경

    윤순은 본관은 해평으로 자는 중화(仲和)이고 호는 백하(白下) 또는 학음(鶴陰)

    이라 한다. 숙종 39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판서까지 올랐는데 평안관찰

    사로 임명되어 임지를 순행 중 벽동(碧潼)에서 순직하였다. 향년 62세로서 그는

     

    글씨와 그림에 일가를 이루었고 특히 글씨가 유명하다. 일찍이 동교(東嶠) 이광사

    (李匡師)는 이렇게 말했다. “백하는 晩出에 홀로 中國의 書意를 得하여 體格이 新

    妙하고 才情이 巧麗, 東人의 孤獨을 一洗하였다. 그가 후학을 계몽시킨 공은 安平,

     

    自庵, 蓬來, 石峯 등 四家의 比가 아니고 또한 世代에 可히 議할 자 있으리오.“ 쉽게

    말해서 백하는 늦데 출발하여 중국 굴씨와 오의를 터득하는데, 그 글씨의 체와

    격이 새롭고 교묘했으며 재치와 경감이 또한 아름답게 담겨져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사람의 고독을 일신(一新)하였을 뿐 아니라 국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후진을 일깨운 공은 안평대군, 김구, 양사언, 한호 등 사대가와 비할 바가 아

    니며 또한 당대에 있어 누가 그하고 어깨를 겨를만 한 자가 있겠는가, 하고 격찬하

     

    고 있는 것이다.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도 ‘백하의 글씨는 징명(徵明) 보다 앞

    선 것인데 세상 사람이 다만 모를 뿐이다.‘고 했다. 강화의 고려산 적석사비문, 홍

    서봉의 비문이 그의 필적이라고 한다. 영조대왕은 1776년 재위 52년으로 승하하였

     

    는데 세존께서 왕위에 올랐는데, 정조대왕이다. 정조대왕은 영조 28년(1752)에 태

    어났으며 아버님 장헌세자가 비참하게 돌아가실 때 11세였다. 어머니 혜경궁(惠慶

    宮) 홍씨는 ‘한중록(恨中錄)’이라는 한글 수기를 써서 그 당시의 일들을 적고 있거

     

    니와 정조대왕은 일생동안 비명으로 돌아간 아버님을 사모해 마지않는 효도로서 

    유명했다. 왕비는 청원부원군 시묵(時黙)의 딸 효의왕후(孝懿王后)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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