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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군의 시한 자/한시(한국) 2009. 4. 6. 22:58
어제도 爛醉하고 오늘도 또 술이로다
긋제 깨엿뜬지 긋그제는 나 몰래라
來日은 西湖에 벗 옴안이 깰똥말똥 하여라
~유천군(儒川君; 연대미상)~
<해설>
어제도 몹시 취했었는데 오늘도 또 술을 마시는구나, 그저께는 조금
깨었었는지 모르지만 그끄저께는 어떠하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내일은 서호의 벗이 찾아오겠다니 또 술을 마시게 될 것으로
깨어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다.
◈ 배경
유천군 이름은 정(濎)인데 선조의 왕자인 경창군의 손자였다. 서화에 능통했다고
한다. 노론 4 대신을 공격한 것은 소론의 소헌(素軒) 조태구(趙泰耈)와 만암(晩庵)
유봉휘(柳鳳輝)였다. 조태구(1660~1723)는 본관이 양주로서 자는 덕수(德叟)였다.
숙종 12년 종형제인 4 대신의 하나 조태화와 동방(同榜)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부제
학과 육조 판서를 역임하고 경종 원년 우의정이 되었다가 이듬해 영의정이 되었다.
노론 4 대신이 연잉군을 세자로 책봉하자 대신들이 권세를 탐내는 짓이다. 하여 이
를 공격했다. 한편 만암 유봉휘는 본관이 문화로서 자는 계창(季昌)으로 영의정 유
상운(柳尙運)의 아들이다. 누실(陋室) 유상운(1636~1707)은 자를 유구(悠久)라 하
며 현종 7년 문과에 급제하여 숙종 21년 우의정에서 벼슬이 영의정에 이른 사람이
다. 만암은 숙종 10년 진사에 오르고 동 14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에 이르렀
다. 숙종이 승하하고 경종이 등극하자 자주 병석에 눕게 되고 왕자가 태어날 가망
이 전혀 없었다. 노론 네 대신이 왕제 연잉군을 세자로 추대하자 이것이 그들의 권
세 연장책이라 하면서 신임사화를 일으켜 그들을 반역자로 몰아 죽였으며 영조대왕
이 즉위하자 우의정에서 좌의정으로 뛰어 올랐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신임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이봉익(李鳳翼), 민진원(閔鎭遠) 등에 탄핵되고 경흥에 귀양
갔다가 을 해년 역율(逆律)로 다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