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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화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4. 19:46

    술을 醉케 먹고 두렷이 안자시니

    億萬 시름이 가노라 下直한다

    아희야 盞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하리라

                        ~정태화(鄭太和;1602~1673)~

    <해설>

    술이 취하도록 마시고 여럿이 둥글게 앉아 있으니 억만 가지의

    근심걱정이 하직 하겠다고 하면서 물러가는구나, 아이야 내 잔에

    술을 가득 채워라, 떠나가는 시름에게 술이나 대접하여 보내리라.


    ◈ 배경

    정태화는 본관이 동래이고 자는 유춘(有春)인데 호는 양파(陽坡)였다. 영의정 정광

    필(鄭光弼)의 후손으로 인조 2년 진사가 되고 인조 6년 아우 치화(致和)와 함께 문

    과에 급제했다. 한문을 잘하여 인조 12년 명나라 사신을 대접하는 원접사(遠接使)

     

    로 선발되었다. 병자호란 때에는 어가를 호위했으며 소현세자를 모시고 심양에 갔

    다 돌아와서 암행어사로 호남, 영남을 안찰(按察)하였다. 이어 좌우 정승을 거쳐 영

    의정이 되었는데 이완을 추천한 사람도 양파였었다. 현종 15년 향년 73세로 세상

     

    을 떠났는데 익헌(翼憲)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 아우 정치화의 자는 성능(聖能)

    이고 호는 기주(碁州)이다. 인조 6년 형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고 검열이 되었는데

    병자호란 후 심양에 가서 봉림대군(효종)를 모셨다. 언젠가 봉림대군이 호종한 신하

     

    를 불러 술을 내렸는데 그는 말하기를 “조신과 왕자는 신분의 차이가 엄연히 있으

    며 비록 이역에 있더라도 술자리를 같이 할 수는 없는 줄 아뢰오.“하고 끝내 나가

    지를 않았는데 효종도 이것을 매우 가상하게 여겼다. 현종 8년 우의정이 되었고

     

    이어 좌의정이 되었다. 이완도 이분에게 심복하여 “내 입조 50년에 종시 게으르지

    않는 분은 오직 정상(鄭相) 한 분 뿐이더라.“하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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