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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혁연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4. 21:33

    닷는 말 셔셔 늙고 드는 칼 보믜거다

    無情歲月은 自髮을 죄촉하니

    聖主의 累世鴻恩을 못 가플가 하노라

                      ~유혁연(柳赫然;1616~1680)~

    <해설>

    잘 달리는 말은 서서 그대로 늙고 잘 드는 칼은 그대로 녹이 슬고

    말았구나, 무정한 세월은 흘러서 백발을 재촉하니 대대로 이어받은

    어진 임금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구나.


    ◈ 배경

    유혁연은 본관은 진주인데 자는 회이(晦爾)며 호는 야당(野當) 또는 필심재(筆心

    齋)이다. 용모가 탁월하고 웅대한 기개가 있는데 또한 학문을 좋아했으며 병서를

    탐독했다. 인조 22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산부사로 나갔다가 삼도통제사, 어영대장

     

    포도대장, 훈련대장을 거쳐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인조 6년 정묘호란 때 장

    인 남이흥(南以興)이 평안절도사로 순절하였고 아버지인 진양군(晋陽君) 효걸(孝傑)

    또한 이 해에 병사하였다. 이때 그는 12살로 상중예절을 조금도 그릇됨이 없이 치

     

    뤄내어 사람들이 모두 탄복했다. 병자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이 포위되었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다가 양성(陽城)에서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와 후

    원의 배나무를 붙들고 북쪽을 바라보면서 통곡을 했다. 숙종 21년 경신대출척(庚申

     

    大黜陟)에 관련되어 영해로 귀양 갔다가 다시 제주도로 옮겨져 거기서 사약을 받았

    다. 이완은 어전에서 물러나자 이제까지 소박만 해온 아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겼다. 만일 아내의 선경지명(先見知明)이 없었다면 자기는 어찌 되었을 것인가.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 부랴부랴 부인을 찾아 그동안의 잘못됨을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부인이 묻는다. “상감께서 혹시 하사 하신 것이 없습니까?” “아 깜

    박 잊고 있었군, 붓 한 자루와 벼루를 내리셨는데 우리 가문의 만대를 두고서 보

     

    물로 삼읍시다.“ 그러나 부인은 하사한 붓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느닷없이 다듬이

    방망이를 들어 붓을 다듬이 돌에 대고 후려치는 게 아닌가. “아니 부인 이게 무슨

    짓이요?“ 이완은 놀랐으나, 부인은 태연한 얼굴빛으로 붓통 속에서 가늘게 말은 종

     

    이를 하나 꺼집어 냈다. 부인은 이인(異人)이었던 것이다. 임금이 무신인 이완에게

    붓과 벼루를 내린다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런 데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붓 가치

    속에 밀서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밀서를 펴보니 “훈련대장 이완에게 병조판서를 겸

     

    임하도록 하겠노라, 북벌책에 좋은 의견이 있거든 적어 올려라.“ 읽고 나자 이완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만일 가보로서 대대손손 간직했다면 효종대왕의 성

    지(聖旨)는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뻔하였다. 이완은 북벌책에 대한 건의서를 써 올

     

    렸는데, 이 내용 역시 부인의 조언이 컸다고 한다. 이를테면 만주는 산이 없고 벌판

    이 많기 때문에 군사들에게 자루를 많이 준비시키고 거기에 흙을 담아 야전에서 쌓

    아올리고 진지를 구축한다는 방안도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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