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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의 시한 자/한시(한국) 2009. 4. 4. 19:15
반밤듕 혼쟈 이러 뭇노라 이내 꿈아
萬里遼陽을 어늬듯 다녀온고
반갑다 鶴駕仙容을 친히 뵌듯 하여라
~이정환(李廷煥;1613~1673)~
<해설>
한밤중에 문득 잠이 깨어 꿈에게 물어본다. 만리 이국땅 요양을
언제 다녀왔느냐? 그러나저러나 반갑구나, 꿈속에 뵌 왕자님들이
지만 생시에 직접 만나 뵌 듯싶구나.
◈ 배경
이정황은 자는 휘원(輝遠)이고 호는 송암(松巖)인데 인조 11년 생원에 올랐으나
병자호란의 국치를 당하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두문불출하였다. 장재(將才)로서
천거를 받은 이완(1602~1674)은 자를 증지(潧之)라 하였고 부원수 이수일(李守
一;1554~1632)의 아들이다. 이수일의 자는 계순(季純)인데 선조 16년 무과에 급
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장기(長耆) 현감으로 동지들과 적을 요격
수 없이 무찌른 바 있었다. 그리하여 밀양부사와 경상수사를 차례로 역임했다. 인조
2년 이수일은 이괄의 난이 있자 4도 부원수로 서흥(瑞興)에서 적을 방어했으나 적
이 서울로 곧장 달리므로 장단의 병력들과 합류하여 길마재 싸움에서 이괄군을 무
찔러 버렸다. 이완도 이때 종군한 바 있으며, 그 공로에 의해 이수일은 계림군이 되
었다. 향년 79세로 인조 10년에 세상을 떠나자 충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완은
인조 2년 무과에 급제하여 이괄의 난 때 아버지 수일과 더불어 공이 많았다. 병자
호란 후 안주병사로 부임했는데 청나라 장수가 시장에서 물건을 약탈하고 값도 치
르지 않으므로 이완이 달려가 “어찌 너 홀로 칼이 있다 하느냐?”하고 말하자 청나
라 장수도 질려서 값을 치르고 사과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