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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서봉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3. 20:21

    離別하던 날에 피눈물이 난지만지

    鴨綠江 나린 물이 프른 빗치 전혀 업내

    배 우회 허여 센 沙工이 처음 보롸 하더라

                           ~홍서봉(洪瑞鳳;1572~1645)~

    <해설>

    임금님께 하직인사를 드리고 떠나던 날 하도 어수선하여 피눈물이

    났는지 안 났는지는 잘 모르지만, 압록강의 흘러내리는 물도 푸른

    빛이란 전혀 없고 온통 핏빛이로구나, 배위의 백발이 된 사공이

    그런 슬픈 일을 처음 본다고 하더라.


    ◈ 배경

    인조대왕은 강화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성문을 열고나와 청태종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었고, 세자를 비롯한 많은 척화파의 대신들이 볼모로 잡혀갔었다. 

    홍서봉은 본관이 남양이고 자는 휘세(輝世)인데 호는 학곡(鶴谷)이다. 선조 27년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응교의 벼슬에 있다가 임금의 사가(賜暇)를 얻어 독서를 하

    였다. 광해군 때에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두문불출하다가 인조반정 후 이조판서,

    대제학을 역임했다. 병자호란 때 우의정이었는데 세자를 모시고 심양(瀋陽)에 갔다

     

    가 돌아왔다. 그는 척화파가 아니라 세자만 모시고서 갔다 온 것이다. 아마 이때 압

    록강을 건너다가 이 시조를 읊었을 것이며 돌아와 좌의정이 되었고 인조 17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이 사람은 성품이 온화하고 문장이 뛰어 났는데 당시 국기(國器)

     

    라는 호칭을 들었다. 인조 23년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시호를 문정(文靖)이

    라 하였다. 병자호란 역시 민족의 일대 수난이었는데 이때 절개를 지켜 순사(殉死)

    한 사람도 많았고 비분강개한 인물도 또한 많았다. 그 이유는 청나라가 만주족의

     

    나라로서 오랑캐였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홍명형(洪命亨;1581~1637)은 역시 본관

    이 남양이고 자는 계통(季通)이라 했으며 호는 무적당(無適堂)인데 절사(節死)한 분

    의 하나다. 형조참의로서 가족과 더불어 강화로 난을 피했는데 수비대장 김경징이

     

    술과 노래로서 즐기며 방어를 소홀히 하자 이를 탄식하고 김상용에게 “공은 장차

    적군이 들어오면 어찌 하시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선원 김상용은 ”80살이

    다 된 노골이 살아서 무엇 하리오.“하고 대답했는데, 서로 붙들고 대성통곡을 했으

     

    며 성이 함락되자 남문에 올라가 화약에 불을 지르고 선원과 함께 장열한 일생을

    마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부인 성씨(成氏)는 마니산에서 목메어 죽었다고 한

    다. 또 우재(迂齋) 이후원(李厚原;1598~1660)은 원래 왕족으로서 남한산성에 있다

     

    가 조정의 공론이 화의로 기울자 단도를 인조대왕 앞에 내놓으며 함께 자결하자고

    말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효종 때 우의정으로 있으면서 북벌토청(北伐討

    淸)의 계획을 주모(主謀)하였다. 그리하여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춘당(春堂) 송

     

    준길(宋浚吉) 등을 등용하여 이 북벌계획을 적극 추진했던 것이다. 효종이 승하하여

    결국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으나 완남군(完南君)에 봉해졌고 향년 63세로 일생을

    마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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