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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의 시한 자/한시(한국) 2009. 4. 2. 22:47
冊덥고 窓을 여니 江湖에 배 떠있다
往來白鷗는 무슴 뜻 머것는고
앗구려 功名도 말고 너를 조차 놀리라
~정온(鄭蘊;1569~1640)~
<해설>
책을 읽다가 머리를 식히고자 창문을 열어보니 호수에 배가 떠 있었다.
그리고 높게 낮게 나는 저 갈매기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서라, 학문을 닦아 이름을 날리겠다는 생각도 버리고 너 갈매기를 좇아
마음껏 살고 싶구나.
◈ 배경
정온은 초계 정씨로서 자는 휘원(輝遠)이고 호는 동계(桐溪)이다. 그는 정인홍 문하
에서 수학했고 광해군 3년 별과에 급제하여 장악첨정(掌樂僉正)에 이르렀다. 광해군
이 영창대군을 죽이자 이를 그르다하는 상소를 올렸고 그 때문에 귀양을 갔다. 인조
반정이 일어나자 사간(司諫)으로 복직되었으며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화의를
반대했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조참판으로서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며 이때도
척화를 부르짖었는데, 화의가 이루어지자 곡끼를 끊고 수일을 통곡하다가 병이
나서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병자년 12월 청나라 군은 의주 전면을 피하여 창성(昌
城) 방면에서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침입했다. 그들은 도중에 성을 만나도 공격
하지 않고 오직 남하하여 침공 3일 만에 벌써 선봉대가 홍제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장안에는 들어오지 않고 군사는 모두 말안장을 풀어 쉬게 하여 마치 공격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뒤따라 돌 본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의
병조판서는 최명길(崔鳴吉;1586~1647)이고 영의정은 김류였다. 최명길은 본관이
전주로서 자는 자겸(子謙)이고 호는 지천(遲川)이다. 선조 때 등과하여 인조반정에
참가했으며 병자호란을 맞아 국가의 일대치욕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내외정세를
깊이 꿰뚫어 보고 화의를 주장했다. 또 김류(1571~1648)는 본관이 순천이고 자는
관옥(冠玉)이고 호는 북저(北渚)이다. 그의 아버지 목사 여흘(如屹)이 임진왜란 때
충주에서 절개를 지키고 죽었으므로 참봉에 임명되었고 선조 29년 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였다. 그리고 광해주를 폐위시키고 인조을 추대하였으며 정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