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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한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3. 21:42

    꿈의 닷니는 길히 자최곳 날쟉시면

    님의 집 창 밧기 石路라도 달흘노다

    꿈길히 자최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이명한(李明漢;1595~1645)~

    <해설>

    꿈속에서 다니는 길의 자취가 만일 난다고만 하면, 아마 임의 집 창문

    밖에는 그 길이 비록 돌길이라도 다 닳았을 것이다. 그러나 꿈속에

    다니는 길은 아무런 자취도 없으므로 그것이 슬플 다름이다.


    ◈ 배경

    이명한은 본관은 영안으로 자는 천장(天章)이고 호는 백주(白州)이다. 월사 이정귀의

    아들로서 광해군 8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예조판서까지 이르렀는데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고 심양까지 끌려갔다. 나중에 풀려 돌아와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세상

     

    을 비관하며 수원에 은퇴하고 있었으나 이따금 불려나가 팔도에 보내는 임금님의

    교서(敎書)를 작성하기도 했다. 인조 23년 향년 51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보다

    앞서 그의 아들 희상(喜相)은 자를 회경(會卿), 호는 영헌(泳軒)이라 하였으며 병자년

     

    문과에 응시했는데 호란으로 중단되자 곧바로 적병과 싸우다가 전사를 하였다. 그의

    처도 죽음을 같이 하였는데 나라에서 정려(旌閭)문을 세워주고 교리의 벼슬을 추증

    다. 월봉(月峯) 이서(李曙;1580~1637)와 이기축(李起築;1589~1645)은 세종

     

    왕자 효녕대군의 후손으로 종형제간이며 인조반정에 공이 큰 사람이다. 월봉은 일찍

    부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진도 군수 등을 역임하고 반정 때 장단부사로서 혁명군을

    이끌었다. 이기축은 자를 희설(希設)이라 하는데 어려서는 방탕하고 놀기를 좋아

     

    하여 건달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무과에 급제하고 이서가 장단부사로 있을 때

    그 밑에 있었는데 반정의 선봉장이 되었다. 이서는 정묘호란 후 남한산성을 수축하였

    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의 북문을 지켰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장군이었다.

     

    그러나 진중에서 향년 58세로 돌아갔고, 이기축은 어영 별장으로서 청나라 군을 남한

    산성에서 막았고 강화 후 세자를 모시고 심양까지 갔다가 3년 뒤 병을 얻어 고국에 돌

    아왔는데 장단부사를 제수하자 부모님의 병이 무겁다 하면서 사양했고 인조 23년 57

    세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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