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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덕일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3. 26. 10:09

    힘써 하는 싸홈 나리 위한 싸홈인가

    옷밥의 뭇텨이셔 할 일업서 싸호놋다

    아마도 조티디 아니하니 다시 어이하리

                          ~이덕일(李德一;1561~1622)~

    <해설>

    힘써서 하는 저 싸움은 나라를 위한 싸움인가? 옷밥에

    묻혀있어서(배가 불러서) 하릴없이 하는 싸움이구나, 아아

    당파의 싸움이 그치지 않으니 이를 달리 어찌 하겠는가.


    ◈ 배경

    이덕일은 자는 경이(敬而)이다. 선조 때 증광싱 급제하고 임란 당시에는 의병장으로

    싸웠다. 당쟁을 한탄하는 ‘당쟁상심가’ 28수를 지었는데 문집인<칠실유고>에 기록

    되어있다. 선조의 정비 의인왕후는 소생이 없었는데 선조 35년 승하하였으므로 새로

     

    왕비를 맞게 되었다. 이리하여 연안 김씨인 제남(悌男)의 차녀를 간택하여 왕비로

    삼았는데 인목왕후(仁穆王后)이다. 세월은 흘러 선조 39년 적자인 영창대군(永昌大

    君)이 탄생했다. 당시 55세이던 선조의 기쁨이 어떠했으랴, 선조는 그야말로 손바닥

     

    속의 보석마냥 아끼고 귀여워했다. 그러나 선조 41년 왕의 병이 갑자기 무거워지자

    임금은 여러 대신을 비밀히 불렀다. 당시의 영의정은 유영경(柳永慶)이었다. 유영

    경(1550~1608)은 본관이 전주로서 자는 선여(善餘)이고 호는 춘호(春湖)인데 선조

     

    5년 문과에 급제하여 내 외직을 두루 거치고 선조 35년 이조판서에서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는데 동인 주에서 유당(柳黨) 또는 소북(小北)파라 불렸다. 정승으로

    있으면서 7년 동안 이끌어준 이로서 그의 당은 대충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송언신(宋言愼), 홍식(洪湜), 유성(柳惺), 이효원(李效元), 이유홍(李惟弘), 김대래

    (金大來), 박승종(朴承宗), 황섬(黃暹), 민경기(閔慶基) 등 다수였다. 이들이 조정의

    요직을 차지하고 그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선조는 영창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었

     

    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영창은 겨우 4살로서 동서도 분간 못할 정도다.

    게다가 세자로서 광해군이 선조 25년부터 책봉되고 있는 것이었다. “영상, 대위(大位)

    는 세자에게 넘기도록 하시오.“ 선조가 모기 같은 목소리로 괴롭게 말하자 유영경은

     

    “아니 됩니다. 적자이신 영창대군이 계신데 어찌 광해군에게 보위를 넘길 수 있겠읍

    니까?“ 이런 임금과 영상의 대화는 김상궁이라는 늙은 궁녀에 의해 낱낱이 도청되고

    광해군에게 알려졌던 것이다. 이 여자는 궁중의 요물로서 이름이 ‘개똥’이라고 전하는

     

    데 재물을 몹시 좋아했다. 그런데 유영경의 계획은 임금의 갑작스런 승하로 대권은

    광해군에게 넘어갔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이이첨(李爾瞻)과 정인홍(鄭仁弘)에 의해

    즉시 유영경 이하 다수가 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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