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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의 시한 자/한시(한국) 2009. 3. 26. 22:13
대 심거 울흘 삼고 솔 갓고니 亭子로다
白雲 깁픈 골의 날 잇는 줄 제 뉘 알니
庭畔의 학 徘徊하니 긔 벗인가 하노라
~김장생(金長生;1548~1632)~
<해설>
대를 심어 울을 삼고 소나무를 잘 가꾸어 꼭 정자 같구나.
흰 구름이 감도는 이런 깊은 골짜기에 내가 살고 있다는 걸
그 뉘가 알 수 있겠는가, 다만 뜰에 학이 오락가락 하는데
그것만이 내 벗이다.
◈ 배경
김장생은 광주 김씨이다. 자는 희원(希元)이고 호는 사계(沙溪)인데 인조 때의 유학자
였다. 사계는 어려서 귀봉(龜峰) 송익필(宋翼弼)에게 글을 배웠으며 다시 율곡에게
성리학(철학)을 배웠다. 벼슬길에도 나가 형조 참판을 지냈다. 사계는 천성이 어질고
순박했으며 품행이 단정하여 마침내 예학파(禮學派)의 대표자가 되었다. 예학파란
고금의 예법에 대해서 고증이 정밀하고 박식하므로 국가의 전례(典禮)에도 밝았다.
저서를 남겼는데 의예문답(疑禮問答), 첨주가례집람(添註家禮集覽), 상례비요(喪禮
備要) 등이 있다. 조선조 제 13대인 명종 때부터 당쟁이 발생하여 동서인이 생기고
선조 때에 이르러 더욱 심해졌거니와 서인의 영수는 송강 정철이었다. 송강은 시조
문학에 있어 많은 걸작을 남긴 분이지만, 성격이 호탕하고 술을 좋아하므로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 송강을 미워하여 동인들이 자주 상소문을 선조 대왕께 올렸다.
이 송강을 공격하는 급선봉은 동암(東庵) 이발(李潑)이었다. 이발(1544~1589)은
자를 경극이라 하였는데 습정(習靜) 민순(閔純)에게 배운 선비였다. 당시의 깨끗한
선비의 대표로서 자처했는데 동인의 영수 김효원이 외직으로 나가자 조정에 남아
정철을 공격했던 것이다. 육곡 이이는 이와 같은 일을 근심하여 동암에게도, 송강
에게도 편지를 자주 보내어 “두 분이 마음을 합하여 나라 일에 힘쓰시오, 두분이
싸우면 나라 일이 어찌되겠소?“라고 하였다. 그러나 일단 고질이 된 당파싸움은 쉽게
가라앉지를 않았다. 동암과 더불어 서인을 공격한 사람은 내암(箂庵) 정인홍(鄭仁弘)
이었다. 정인홍은 남명 조식의 제자로서 재주가 있는 사람으로 책사(策士)였다.
율곡은 다시 당시의 명사로서 글재주가 있는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에게 “동서인이
서로 싸우지 말라는 상소문을 쓰도록 하게, 그리고 혹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내가
고쳐 줌세“라고 일렀다. 휴암은 율곡의 말대로 하였는데, 입이 가벼웠던 모양이다.
술자리에서 이 일을 자랑삼아 친구에게 말했는데, 이것이 동인 귀에 들어갔다. 동암
이발과 내암 정인홍은 율곡을 맹렬히 공격했다. 경연(經筵), 즉 임금에게 학문을 강의
하는 중신으로서 남의 상소문이나 고쳐주는 것이 말도 안 된다. 정말 나라를 사랑한다면
자기가 직접 상소할 것이지 후배를 시켜 올리다니 비겁하지 않은가, 이런 식의
공격이었다. 그리고 율곡을 제일 공격한 것은 당시 정언(正言) 벼슬로 있었던 송응형
(宋應泂)과 송응개(宋應漑) 형제였다. 그러나 같은 동인이면서도 동강(東岡) 김우옹
(金宇顒)은 “율곡 이이는 군자인데 어찌 그다지 심하게 공격할 수 있는가.“하고 나무
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