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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섬의 시한 자/한시(한국) 2009. 3. 22. 13:46
玉을 돌이라 하니 그려도 애드래라
博物君子는 아는 法 잇것마는
알고도 모르는 체하니 그를 슬허 하노라.
~홍섬(洪暹;1504~1585)
<해설>
옥을 돌이라고 고집하니 그것이 또한 애닯구나 박물군자라면 혹
알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알고도 모른 체하니 그것이 슬픈 일이다.
◈ 배경
홍섬은 본관이 남양인데 자는 퇴지(退之)이고 호는 인재(忍齋)였다.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내 홍언필(洪彦弼)이었으며 중종 23년 생원에
오르고 동 26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 이조좌랑을 지냈는데
김안로 일파에 몰려 흥양(興陽)으로 귀양을 갔다. 중종 32년 김안로
등이 사사(賜死) 되자 다시 복관하고 벼슬이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때 동서 양파의 당쟁은 더욱 치열하기만 했으며 당쟁을 완화
코자 율곡 이 이의 건의로 서인 심의겸을 개성유수(開城留守)로 내보
내고 김효언은 회령 부사로 내보냈는데 그래도 당쟁은 종식되지 않았다.
김효원이 나중에 “처음에는 다만 나라를 위해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이렇게
격심해 질 줄은 몰랐다.“며 한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