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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의 시한 자/한시(한국) 2009. 3. 22. 00:07
아버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父母옷 아니시면 내 몸이 업실낫다
이 德을 갑흐려 하니 하늘 긋이 업스샷다
<해설>
아버님이 날 낳으시고 어머님이 나를 기르시니 부모님이 아니셨더라면
이 몸이 없었을 것이다. 이 덕을 갚으려고 하니 하늘 같이 끝이 없구나.
지아비 밧갈나 간듸 밥고리 이고 가
飯床을 들오듸 눈썹의 마초이다
眞實노 고마오시니 손이시나 드르실가.
~주세붕(周世鵬;1495~1554)
<해설>
남편께서 밭 갈러 가셨는데 밥광주리를 이고 가다, 밥 차린 것을 공손히
눈썹 높이까지 맞추어 올린다. 진실로 고마우니 손님이나 다를 게 없구나.
◈ 배경
모후의 간섭에서 벗어나자 명종은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다. 우선 을사사화의
억울한 선비를 복관해 주고 그들의 넋을 달랬다. 또 심의겸(沈義鎌)을 중용했는데
동서의 붕당이 여기서 생긴다. 주세붕은 본관이 칠원(漆原)인데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로 성리 학자였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효자란 소릴 들었는데 중종
17년 국자시(國子試)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正字)에서 사가 독서를 하였고 다시
옥당에 들어 정자, 부수찬 등이 되었고 당시의 권신 김안노(金安老;1481~1537)의
비행을 탄핵했다. 김안노는 벼슬이 영의정까지 오른 사람이나 성격이 간사하고 방
자하여 여러 번 대옥을 일으켜 왕실과 선비들을 희생케 하였다. 결국 그도 중종 32
년 탄핵을 받아 죽게 되지만, 이와 같은 권신을 공격했던 것이다. 중종 36년 호조
참판이 되고 풍기군수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백운서원(白雲書院)을 세웠다.
또 황해관찰사로 있을 때에는 해주에 문헌공 최충(崔冲)의 사당을 세워 그 유덕을
기리었다. 명종 9년 세상을 떠났는데 저서로 관동별곡, 태평곡, 군자가, 오륜가,
동국명신 언행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