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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의 시한 자/한시(한국) 2009. 3. 22. 13:39
頭流山 兩端水에 녜 듯고 이제 보니
도화 쁜 맑은 물에 山影조차 잠겨셰라
아희야 무릉이 어듸오 나는 옌가 하노라
~조식(曺植;1545~1609)~
<해설>
지리산의 양단수를 옛날부터 소문으로만 듣고 있었는데 이제 실제로
와보니까 신신 사는 곳을 말해주는 도화꽃이 뜬 맑은 물에 산 그림자
조차 그 속에 드리워져 있었다. 아이야 선경인 무릉이 여기인 듯싶구나.
◈ 배경
조식은 창녕 사람으로서 자는 건중(楗中)이고 호는 남명(南溟)이었다.
남명은 어려서부터 담이 크고 비상한 재주를 갖고 학문이 높았으나
벼슬을 바라지 않았다. 오직 산야에 묻혀 독서를 즐겼는데 중종 말년
이언적(李彦迪)의 추천으로 헌릉 참봉이 되었으나 응하지 않았고 명종
초년 특히 6품의 벼슬로 정성종부(典性宗簿) 주부로 불렀으나 사양했다.
그러므로 비록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으나 당시 퇴계와 더불어 문장과
시문이 뛰어나 덕망이 높았다. 지리산에 들어가 철학적인 사색을 일삼으며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선조가 특별히 대사간을 추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