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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종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3. 18. 11:47

    蜀魄啼 山月低하니 相恩苦 倚樓頭라

    爾啼苦 我心愁하니 無爾聲이며 無我愁고 낫다

    寄語人間離別客하나니 愼莫登 春三月 子規啼

    明月樓를 하여라.

                                ~단종(端宗;1441~1458)~

    <해설>

    두견이 슬피 울고 밤이 깊으니 멀리 있는 사람들을 그리며 다락

    마루  난간 끝에 몸을 기대었노라 두견아 네가 울면 내 또한 괴롭고

    네 울음 없으면 근심도 사라지는 것 같구나 이별한 이들에게 말하노니

    춘삼월 두견이 울고 달 밝은 다락에는 삼가 오르지 말아 다오.


    ◈ 배경

    영월로 쫓겨난 단종은 몇 명의 시녀와 하인 하나를 데리고 영월에서도 떨어진 인적이

    드문 청령포 근처의 압자에 감금돼 있었다. 세조는 그를 죽이자는 간신들의 성화에

    이기지 못하고 사략을 여러 번 내렸는데 차마 그것을 전달하지 못하고 스스로 죽거나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단종은 소문을 듣고 천치인 하인에게 시켜 말하기를 "내가

    문틈으로 명주 올을 내 보낼테니 너는 힘껏 그것을 잡아 당겨라“하고 분부했다. 단종

    은 명주로 목을 매고 천치인 하인에게 잡아 다니라니 하인은 멋도 모르고 힘껏 잡아

     

    다녔는데 한참 있다 문을 열어보니 단종은 이미 죽어있었다. 이때 단종은 겨우 17세

    였다. 너무나 엄청난 일에 하인은 기성을 지르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시녀들도 청령

    포의 벼랑에서 강물에 몸을 던져 모두 죽었다. 세조는 그 시체마저 장사지내는 것을

     

    엄금했는데 당시 영월 군아의 호장(戶長)으로 있었던 엄흥도(嚴興道)라는 사람이

    의분을 느꼈다. 그는 밤중에 만일 발각되면 삼족이 멸문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몇

    필의 베를 준비해 갖고 단종의 시신(屍身)을 정성껏 염하고 등에 지고 나섰다.

     

    그런데 때는 겨울로서 산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얼마 쯤을 가려니까 다박솔

    아래서 노루가 한 마리 웅크리고 있다가 엄흥도를 보고 후닥딱 달아나는 것이었다.

    보니까 거기만 눈이 쌓여있지 않고 평평했다. 흥도는 하늘의 도우심이라 믿고서

     

    단종을 그곳에 매장하고 가족들과 함께 산속 깊이 피하여 살았다. 2백년이란 세월이

    가고, 숙종(肅宗)이 어느 날 침전에서 이야기책을 읽으시다가 이 엄청난 단종의 비극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단종이 다시 왕으로서 복위되고 그 능을 만들었으며 엄흥도의

     

    의로운 일이야말로 사육신 못지않은 충절이다 하는 말고 함께 그의 후손을 찾았던 것

    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상주로 자손들이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고 엄흥도

    에게는 공조참판이 추증되었다. 그러나 사육신 등 명신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데는 좀

    더 세월이 흘러 영조(英祖) 때에 비로소 실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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