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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여행(소주)
    일탈/외국 여행기 2008. 6. 30. 08:06
     

    소주

     

    오후 4시 30분 소주로 가는 1시간 30분 동안 조그만 언덕도 하나 없이 넓은

    평지만 버스를 따라온다. 해발 5m로 중국에서 가장 낮은 지대인 상해에서

    소주까지 가면서 보인 것은 2층 집들이 같은 모양으로 늘어서 있는데 모두

     

    1층은 창고로 쓰고 2층만 거주하는 독특한 모양이다. 지대가 낮아 1층은 젖어 있어 그렇단다.

    오후 6시 조금 지나 소주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 본 광활한 땅덩어리가 아직도 머리에 빙빙

    돌고 있다. ‘중국원대반점’(호텔)에 투숙하고 푸짐한 저녁 식사를 했다. 야경이라면 상해의

     

    황포강에서 유람선으로 너무 신기하고 황홀한 포동의 건물들을 구경했기에 여기서는 그냥

    쉬자했다. 중국에서는 건물 하나 하나에 굉장히 신경을 써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의 아파트는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모양인데 반해 중국은 같은 건물은 허가도 안

     

    내주고 준공 검사도 안 해준단다. 그러니 건물마다 모양이 다르고 옥상은 왕관모양이나 꽃

    모양이나 다른 예술적 장식물을 만들어 놓아 밤에는 각종 색깔의 조명으로 관광객들의 넋을 

    빼놓는다. 요즘 우리나라도 현재 건축하는 아파트의 옥상에 둥근 모양의 구조물이 하나씩

     

    생겨나는 것을 보니 우리도 건물을 꾸미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고 할만치 아름다운 소주의 아침은 밝았다. 흰 빵 하나와 죽 한 공기의

    식사는 이제 입에 익었다. 호랑이를 닮은 언덕이라는 뜻의 호구를 둘러보았다. 봉긋한 언덕

     

    인데 춘추 전국시대의 오나라 합려왕의 묘로 알려져 있는 언덕이다. 중국의 문호 소동파는

    “소주의 호구에서 놀아보지 않으면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라고 말했단다. 호구 가는 길

    입구에 들어서면 돈을 받고 태워주는 가마와 마차가 있는데 이것들을 타고 오르면 고관이

     

    된듯한 기분이 들겠다. 호구에 다다르면 ‘검을 시험한 바위’라는 뜻의 ‘시검석‘이 길이 2m

    너비 약 1.5m 가량의 넓적한 돌이 단 칼에 베어낸 듯이 가운데가 곧게 갈라져 있다. 시검석을

    지나면 무지 넓고 큰 너럭바위가 높이 있는 ‘천인석’이 있다. 합려왕이 그의 아버지 무덤을

     

    만들고 그 위치를 비밀로 하기 위해 공사에 동원한 천명의 인부를 살해하여 묻은 곳이다.

    호구의 샘물이 진강과 무석의 샘물에 이어 천하에서 세 번째로 맛이 좋다는 제삼천을 구경

    하고 호구 정상에 올라갔다. 정상에는 959~961년 사이에 만들어진 호구 사탑이 있는데 8각

     

    7층탑으로 높이는 47.5m고 약 15° 가량 기울어진 탑이다. 양나라 519년에 세워진 한산사는

    당나라의 유명한 고승 한산이 머문 뒤부터 ‘한산사’라는 이름이 붙은 고찰이다. 다섯 차례나

    화재가 발생하여 거의 소실되었는데 청나라 말기인 1907년 재건하였다한다. 당나라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이라는 시에 등장한다. 장안으로 과거 시험 보러 갔다가 세 번째 고배를

    마시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배위에서 한산사의 종소리를 듣고 그러지 않아도 수심에 차 있던

    장계는 즉석에서 시를 지었다. ‘한산사’ 벽에 한 면 가득 이시를 적어 놓았기에 적어왔다.

     

    ‘月落烏啼霜滿天,  달은 지고 까마귀 우니 서리만 하늘에 가득하데
    ‘江楓漁火對愁眼,  강가의 단풍나무는 고기잡이배의 불빛에 근심 차 잠 못 이루네,
    ‘姑蘇城外寒山寺,  오랜 소주 성 밖 한산사
    ‘夜半鍾聲到客船,  한 밤중 종소리가 나그네 뱃전까지 이르네.


    자신의 낙방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 시에 나오는 종은 청나라 때 일본이 약탈해
    갔으며 지금

    것은 1907년에 다시 주조한 것이다. 한산사 웅보전에 있는 종은 일본이 사과의 뜻으로 보내온

    거란다.  한산사의 종루는 2층이고 종도 2층에 걸려있다. 종은 한번 치면 10년 젊어지고 행운이

     

    온다는 전설이 있어 종치러 오는 사람이 많은데. 5원에 세 번 칠 수 있게 해준다. 소주 최대의

    정원인 졸정원에 갔다. 북경의 이화원, 승덕의 피서산장, 소주의 유원과 함께 중국 4대 명원.

    졸정원이라 이름 붙힌 건 진나라 반악이 지은 한거부의 구절에 나온 것. 명나라의 어사 왕헌신이

     

    관직에서 추방당해 고향에서 지내는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말이란다. 전체면적은 50㎢로 그 중

    3/5이 크고 작은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못주변에는 정자와 누각, 작은 오솔길과 다리, 꽃

    무늬가 새겨진 화창, 회랑이 있고 三十六원앙관은 졸정원을 찾아온 손님을 대접 하던 곳이다.

     

    건물의 창문은 거의 마름모꼴인데 창문의 유리는 남색이다. 이것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이라는데 바깥에서 보면 거울처럼 보인다. 견산루는 2층 건물인데 올라가는 계단이 없다.

    그런데 건물 앞의 다리를 건너 옆으로 돌아가면 백무향 숲이 나오고 그 사이 자갈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2층으로 올라간다. 견산루 2층에서 내려다보는 연못은 그냥 폭 들어가고픈

    충동이 인다. 졸정원의 대표적인 정자는은은한 연꽃 향기가 멀리까지 퍼진다는 뜻의 원향당

    이다. 졸정원을 구경할 수 있는 전망대와 같다. 유원은 빼어난 경치의 정원인데 성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산림의 풍취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전체 면적은 약 30㎢, 동, 중, 서, 북

    네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공간마다 다른 주제로 조성 되어있다. 회랑을 주제로

    삼은 동부는 700m 길이의 장랑과 그 벽에 새겨진 독특하고 다양한 문양의 화창이 유명하다.

     

    화창을 통해 정원을 내다보는 볼거리는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다. 중부는 산수를 주제로 꾸며

    놓았는데 산이 귀해서 더욱 더 잘 꾸며 놓은 것 같다. 서부는 가산의 기묘 풍경을 주제로 삼았다.

    안에는 유원 삼봉이라는 괴상한 모양의 바위가 3개 있는데 중앙의 관운봉은 태호석의 왕이

     

    불리는 중요 유물이란다. 소주의 상징 북사탑은 강남지역에서 제일 높은 76m에 8각 9층탑인데

    양나라 때 건축한 것을 남송시대 때 중건한 것이다. 7층 이상 올라가면 소주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소주 전체를 포근히 안고 흐르는 외성하는 소주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운하가 아니고

     

    삶의 터전이란다. 남쪽 관문인 반문은 이끼 낀 성벽, 운하, 아치형 돌다리가 어우러져 운하와

    육지를 잇는 커다란 성루다. 반문으로 흘러 들어오는 운하는 아치형의 오문교 밑을 지나 소주

    시내로 들어간다. 반문 입구의 오문교는 시내에서 제일 큰 돌다리로 운하 옆의 낮게 모여 있는

     

    검은 기와집과 긴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보면 물결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놀이 너무

    아름다워 자세가 굳는다.  사람들은 다리는 나무로 하던 돌로 하던 모양은 모두 아치형으로

    만드는데 가운데는 굉장히 높게 만들어 전망대 구실을 하게 한다. 운하의 도시 소주는 물길이

     

    바둑판처럼 가로 세로로 연결 되는데 옆집에 가도 배를 타고 가고 먼 길을 가도 배를 타고 간다.

    골목은 폭이 1.5m 정도 되는 것도 있다. 여기도 작은 배는 쉽게 다닌다. 물은 연녹색인데 이끼가

    많아서 냄새가 날 것 같아 손을 담그고 냄새를 맡아보니 이외로 깨끗하여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우리의 좀 큰길 같고 좁은 골목길 같은 수로는 꼭 필요해 차가 다니는 길 말고는 전부 수로다. 넓은

    곳은 우리의 4차선 정도 그리고 다리는 아치형, 그 아치 밑으로 크고 작은 배가 지나간다. 배를 타고

    수로를 한 시간 정도 갔다가 돌아왔다. 아치형 다리가 수도 없이 많다. 이쪽 동네서 저쪽 동네로

     

    가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다리를 걸어서 또는 배를타고 건너서..두 시간 동안 구경하면서 제일

    많이 눈에 띈 것은 그 물에 그냥 빨래를 하고 있는 주민들이다. 물 오염이 제일 걱정인데 괜찮단다.

    몇 백 년을 그렇게 살아 왔는데도 물은 더 더러워지지 않았다. 우리가 한 시간 정도 배타고 나가니

     

    그곳은 강으로 연결되는 곳이다. 무지 큰 기선과 상선들이 그리고 어선들이 다니는데 꼭 바다인

    알았다. 우리나라 강을 두고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강인데 수평선이 보인다면  누가 믿겠는가?

    직접 보고 있는 나도 믿기지 않는데... 돌아오는 그 수로가에 인민들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드러

     

    나고 있었다. 우리의 60년대 생활상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깨진 벽돌까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전부 주워 모아서 이고 지고 가는 것이 낯설지가 않다. 편하게 사는 세상이 있으면 어렵게 사는

    세상도 있는 것이 인간이 사는 곳인가 보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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