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중국 여행(상해)
    일탈/외국 여행기 2008. 6. 30. 07:32
     

    상해

     

    상해 ‘항흥반점(5성 호텔)’에 투숙했다. 식사를 하고 상해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이것저것 뒤적여 좀 찾아냈다. 구경을

    편하게 하기위해서... 중국 제 1의 국제 무역항 상해는 중국

     

    동해안의 중심부에 있는 경제, 무역, 기술, 문화의 중심도시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동쪽 해상의 출입문으로 동중국해와 접해있고 소주하와 황포강

    같은 큰 하천 외에도 여러 작은 수로가 상해 전체에 종횡으로 뻗어 있다. 상해시의

     

    총면적은 6천 300백㎢로 서울시 면적의 10배나 된다. 그리고 아열대 기후에 속하지만

    사계절이 분명하고. 7월 평균 기온은 27℃로 우리와 비슷한데 하루 기온 중 35℃까지

    오르는 날이 많단다. 가장 추운 1월의 평균 기온은 3℃를 웃돌 정도로 따뜻하다.

     

    상해의 여행적기는 봄(4월중순~6월하순)과 가을(9월하순~ 10월하순)이다. 딱 맞게

    온 것 같다. 무역, 금융의 도시 상해는 6천년의 역사를 지닌 역사 도시다. 1842년 아편

    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남경조약에 의해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고 1845년부터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의 조계가 설치되었으며 이들 조계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중국의 사법, 행정권과 경찰력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으로 존재하였다.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는 1926년 항주로 활동지를 옮기기 전까지 독립군이 본거

     

    지로 삼았던 곳이다.· 상해는 국제교통의 요충지고 각국의 조계가 설정돼 국제정세

    파악이 쉬워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우리 항일투사들은 최우선의 활동근거지로 삼았던

    곳 마당로 보경리의 우리 임시정부청사는 전체면적 16평, 방도작고 복도는 너무 좁고

     

    2층 올라가는 계단은 두 사람이 같이는 못 올라갈 만치 좁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6년간 사용한 장소이다. 골목을 들어서면 집들이 따로 독립된 것이 아니고 긴 벽에

    출입문이 간격 맞게 똑 같은 모양으로 있어 표시가 없으면 찾기도 힘들겠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1층에는회의실이 있고 임정요인들의 단체사진이 걸려있다. 2층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이 걸려있고 이승만, 박은식, 이동녕 등이 사용하던 집무실이 있고 3층은

    숙소인데 임정수립상황과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김구 주석의 침실은 작은 침대하나

     

    달랑 있는 아주 작은 방이다. 이렇게 좁은데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신 것 생각하면서

    넓디넓고 호화스런 집에 살며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며 목소리 높이는 소인들.. 자기

    자식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인 군대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안 보내는 정치인들이

     

    가소롭다. 김구 주석은 이 작은 침실도 마음 놓고 이용 못했다. 윤봉길의사 의거 후 악에

    바친 일제는 광란하듯 임시정부인사들을 쫓기 시작해 김구 선생은 60만원의 현상금까지

    붙어 아슬아슬 피신 생활을 했고 그나마 동병상린이라 중국 사람들이 도와주었기에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고, 임시정부도 여러 곳을 이동하며 활동했다하니 그 고생 눈에 선하다.

    3. 1운동 후 점차 심해지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상해로 옮겨온 임시정부는 한곳에서 일을

    한 게 아니고 1919년부터 1932년까지 13년 동안 상해의 이곳저곳을 열 번 이상 옮겨

     

    다니며 독립운동을 지휘한 사실도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프랑스가 남경로 서남쪽 회해로

    일대를, 영국은 남경로 북쪽에, 일본은 홍구 공원이었던 노신공원 주변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1842년 아편전쟁에 패한 청왕조는 영국과 맺은 남경조약에 의해 상해와 5개 도시를

     

    개항해서 중국 최초의 경제 특별지구가 된 것이다. 외국의 기업과 자본이 들어 오면서 도시

    곳곳에 유럽식건물이 들어섰고 1930년대에는 세계제일의 무역항 도시로 부상하였단다.

    상해는 다른 곳과 달리 관광명소가 대부분 시내에 밀집되어 있어 하루 정도면 충분히 둘러

     

    볼 수 있다. 노신공원,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방송관제탑인 동방명주, 금무빌딩, 상해

    박물관, 인민광장, 복주로, 운남로, 남경로, 예원, 예원주변에 있는 예원상성, 선종의 명찰인

    옥불사, 용화사, 주장마을 등, 상해요리는 사천요리, 북경요리, 광동요리와 함께 중국 4대

     

    요리중 하나이며 상해, 남경, 소주, 항주지방의 요리를 말한다. 다양한 요리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기후와 풍부한 농산물, 해산물의 집산지기 때문이겠다. 명물로는

    황포강변 포동 개발지구에 높이 솟아있는 상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동방명주, 이것은

     

    방송 관제탑으로 높이 468m 나된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고 한다.

    상해를 2010년 아시아 제일의 무역항으로 우려는 야심을 구체화시켜 개발하고 있는

    황포강 동쪽의 포동 신구에 있는 동방명주, 이 수신탑은 크고 작은 11개의 둥근 공모양의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공모양은 진주를 나타내고 그 옆의 황포강은 옥쟁반을 상징한다고 크고

    작은 진주가 옥쟁반에 떨어지는 이미지를 표현한단다. 사용된 철의 총중량은 12만 5천톤, 파리

    에펠탑의 약 18배나 된다니... 7개의 TV 전파와 10개의 FM 전파 등 17개의 전파를 발사할 수

     

    있다. 위의 원형구조물까지는 263m인데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전망은 포동

    지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어둠이 내리고 조명등이 켜지면 이 건물은 마치 우주로 향하는

    듯한 화려함이 드러난다. 인접해 있는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88층의 금무빌딩은 그

     

    높이가 420.5m로 동양의 전통미와 현대의 세련미가 어우러진 것으로 황포강 주변을 조망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어 화려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프랑스 유명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외벽이 전부 유리라서 멀리서도 눈에 띄고 3억 5.000만 위안을 들여 만든 대형

     

    극장은 야경의 도시 상해를 더욱 화려하게 한다. 내부는 대극장(1.800석), 중극장(550석),

    소극장(250석)의 이 극장은 유명한 교향 악단이나 성악가들의 무대가 되는 상해 최고의

    문화 공간인 상해 대극원을 보고 남포대교로 갔다. 런던에 타워브리지가 있다면 상해에는

     

    남포대교가 있다. 상해도심을 가로질러 우뚝 서 있는 다리로 길이 8344m, 교각은 46m

    간격으로 아무리 큰 배라도 지나다닐 수 있다. H자 형태의 거대한 기둥두개가 다리 위 높게

    솟아 있고 다리 양쪽에는 보행이 가능한 도로가 놓여져 있어, 새해 첫날인 1월 1일 오전만

     

    해돋이 보라고 보행을 허용하는 부산의 광안대교와는 사뭇 다르다. 또 하나의 다리는 우송

    강에 놓인 다리로 당시 다리 북쪽 영국 조계지로 다리를 건너오는 가난한 중국사람 들에만

    통행로를 받았단다. 일제가 전승기념 행사 겸 일왕의 생일축하 행사를 벌인다는 정보를

     

    입수한 김구 주석의 명을 받은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11시 40분 행사장의 묵도

    시간 단상을 향해 물병폭탄을 던져 상해 점령 일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등 침략의 원흉

    들을 폭살했다. 당시 1개 군단이 한 달 동안 저항하고도 상해를 일본군에 빼앗겼던 중국인

     

    들은 일제히 환호를 올렸단다. 중국 총사령관이었던 장개석은 “중국의 백만 대군도 불가능한

    거사를 한국 용사가 해냈다“고 극찬했단다. 그 공원이 중국의 문학가이고 사상가이며 혁명가

    였던 중국 근대화이 아버지 노신의 묘를 1956년 10월에 만국공묘에서 이쪽으로 이장하여

     

    노신공원이라 불리운다. 노신 공원에는 돌에 윤봉길의거장소 1932, 4, 29이라 새겨고, 의거

    현장에는 묘비상단에 모택동이 쓴 ‘노신선생지묘’라는 글자가 씌어 있으며 묘비 뒤에는 한 손에

    책을 들고 의자에 앉아있는 노신의 좌상이 있다. 1994년 노신동상 오른쪽으로 약 3분 거리에

     

    한국 건축 양식으로 세워진 정자의 이름은 윤봉길 의사의 호를 따서 ‘매정’이라 지었다. 상해에는

    옛날에 지어진 많은 정원들이 모두 없어지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예원’ 인데 400여 년의 역사

    지닌 강남의 고전적인 정원이다. 예원을 만든 사람은 명나라 때의 관료 ‘반윤단’이 그의 아버지

     

    ‘반은’의 노후를 생각하여 18년이나 걸려 고향 상해 한복판에 만든 것이란다. 명, 청시대의 정형

    적인 정원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오솔길처럼 좁고 구불구불한 회랑과 다리를 걸으며

    우리의 직선 다리를 생각한다. 예원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운남 지방의 돌인 태호석을 가져다

     

    거대한 산을 만들었는데 2만 2천여 톤의 돌이 사용된 이 산의 높이는 12m, 정상에 올라서면

    예원 전체를 감싸고  있는 용담의 굴곡과 정원의 아름다운 배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원에는

    40개가 넘는 정자와 누각이 있고 주인이 바뀔 때마다 이름을 다르게 붙였던 ‘삼수당’ 아름다운

     

    기생을 선택하는 곳인 ‘점춘당’ 경극을 즐기는 공연무대였던 ‘고희희대’가 특이하다. 옥불사는

    청나라 1882년에 창건된 선종의 사찰인데 옥으로 만든 불상이 안치되어 있어 더 유명하다.

    송나라의 궁궐양식을 모방하여 지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장엄하며 청나라 광서 황제

     

    때 승려 혜근이 미얀마에서 옥불 다섯 존을 가져와 보타산으로 가던 상해에 옥불사를 짓고

    두 존을 모셨다 한다. 용화사는 상해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로 태평천국의 난 때 대부분 소실

    되는 화를 당했단다. 지금의 건물은 청나라 광서 황제 때인 1875~1908년에 개축된 것이며

     

    이후 문화대혁명 때 또 한 번 손상을 입은 것을 부분적으로 개축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다.

    벽돌과 나무로 건조된 높이 40.4m의 7층 8각 용화탑은 274년 세워진 이후 당나라 말기에 거의

    파괴되었다가 송나라 초기인 977년에 다시 만들었으며 태평천국의 난 때는 다행히 화를 면하였

     

    단다. 탑신은 짙은 갈색하고 노란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처마 끝은 검은색인데 풍경이 맑은

    소리를 내며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이 상해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오랜 세월의 때를

    묻힌 채 1천 7백여 년 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탑은 이름 그대로 기와 얹은 지붕이 각층마다

     

    8각으로 뽀족한 각을 내밀고 있으며 7층으로 지어졌다. 각층을 올라가며 점점 넓어지는 주위의

    경치를 빙 둘러보고 내려왔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있고 한적하여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더

    깨끗하게 보존되어 오래된 도찰의 깊은 맛을 풍기는 용화사는 남쪽에서 부터 미륵전, 천왕전,

     

    대웅보전, 삼경전, 방장루가 앞뒤로 반듯하게 배치되어 있고 건물 사이에는 향로와 탑이 놓여

    있다. 경내는 그윽한 향냄새가 퍼져있으며 불상 앞에는 진지하게 예를 올리는 사람들로 북적

    이고 있었다. 유명한 ‘용화만종’의 저녁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용화사... 우리를 망설

     

    이지도 않고 옛날로 데려가주는 용화사는 입장권을 사면 입장권과 향기 좋은 향 한 다발을 같이

    준다.


    '일탈 > 외국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여행(항주)  (0) 2008.06.30
    중국 여행(소주)  (0) 2008.06.30
    중국 여행(광쩌우)  (0) 2008.06.29
    중국 여행(마카오)  (0) 2008.06.29
    중국 여행(홍콩)  (0) 2008.06.29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