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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무섬마을을 가기위해 영주역 건너편에서 3번 버스를 타고 영주여객 즉 시내버스터미널로 가야한다.
영주에는 시내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으니 잘 보고 타야하고 또 영주에는 버스 배차 간격이
멀어 차를 놓쳤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 버스 노선과 시간을 항상 잘 챙겨서 다니면 여행이 다소 편하고
즐거울 것이다. 역에서 영주여객으로 이동할 3번 버스는 요금이 1,200원, 영주여객에서 무섬마을 들어가는
20번 좌석버스 요금은 1,500원이다. 무섬마을에 도착하면 버스는 바로 출발한다는 것도 유념할 일이다.
♣ 버스 시간표
영주여객 출발/ 06:15, 09:50, 13:20, 15:00, 18:40,
무섬마을 출발/ 06:35, 10:10, 13:40, 15:30, 19:10,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이라 불린다. 마을 주변을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휘돌아 흐르는 대표적인 물동이마을이다. 무섬마을의 역사는 16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남(潘南) 박씨인 휘(諱)수가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후 선성(宣城) 김씨가 들어와 박씨 문중과 혼인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있다. 40여 가구 전통가옥이 지붕을 맞대고 오순도순 마을을 이루는
무섬마을은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이 오롯이 남아있다.
영주 무섬마을의 길목이였던 옛 외나무 다리
해우당
이 건물은 선성 김씨 입향조 김대의 셋째집 손자 영각(1809~1876)이 1830년에 건립하였고 고종 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이 1879년에 중수하였다. 건물의 평면구성은 전면의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큰사랑과 아랫사랑을
두었는데, 특히 우측의 큰 사랑은 지반을 높여 원주에 난간을 돌려 누마루를 꾸몄다. 정면 5칸의 안채에는 대청마루 좌우로
상방과 안방을 두고 부엌과 고방으로 좌, 우익사를 구성하였다. 안대청의 상부는 판대공에 첨차를 삽입하여 종도리를 받게 한 것이
독특하다.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ㅁ자형 가옥의 평면구성을 잘 갖추고 있고, 수도리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이다. 사랑채에
걸려 있는 해우당의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만죽재
이 건물은 마을의 입향시조인 반남박씨 휘, 수(1641~1729)가 마을 서편 강건너 머럼에 거주하다가 현종 7년(1666)에 이곳에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다. 원래 당호는 ‘섬계초당’이었으나 입향조의 8대손인 승훈(1865~1924)이 중수하고 당호를 ‘만죽재’라
하였다. 무섬마을 중심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건물의 평면구성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정면에 5칸의 정침을 두고 양쪽에
익사를 달았으며 전면에 사랑을 두어 전체적으로 ㅁ자형 평면을 구성하고 있다. 안채와 좌, 우익사는 납도리 삼량가로 간결하게
처리하였으나 사랑채만은 그 격을 높여 전면에 원주를 세우고 오량가에 합각지붕을 얹었다. 이 마을에 산재하고 있는 ㅁ자형
가옥 중 건립 연대가 가장 오래된 집으로 당시의 평면구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
박덕우 가옥
이 가옥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까치구멍집으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이다. 전열의 봉당을 중심으로 좌측돠 우측에
마구간과 정지(부엌)를 두었으며 후열에는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사랑방과 안방을 두었다. 기존의 마구간은 최근 봉당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마구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마을 6칸 까치구멍집의 기본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