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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주 선비촌
    일탈/여행사진 2014. 6. 20. 07:13

    영주 선비촌은 소수서원을 둘러 보고, 소나무 그늘 아래 잔디밭을 지나 죽계교를 사이에 두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와 상민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전통 민속마을이다. 만죽재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인동장씨 종택, 김세기 가옥, 두암 고택, 김상진 가옥 등 기와집 7채와 장휘덕가옥,

    김뢰진 가옥, 김규진 가옥, 두암 고택 가람집, 이후남 가옥 등 초가집 5채는 가족 관광객들이 숙박할 수도록

     

    개방된다. 영주는 예로부터 학문과 예(禮)를 숭상했던 선비문화의 중심지이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중국의

    주자학을 소개하여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한 최헌 안향 선생의 출신지이며, 조선 개국 당시 유학을 한 정도전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영주는 우리 역사 전반에 걸쳐 훌륭한 선비들을 많이 배출하여 그 명성이 높았으며

    영주선비들은 관직에 진출하는 한편, 향리에 머물러 학문에 열중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선비촌 들어가는 죽계교, 이쪽은 소수서원이고 다리 건너 저쪽은 선비촌이다. 

     

    다리를 건너니 마을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장승들

     

     충의각과 열부각

     

     마을 초입에 자격루와 서적의 조형물이 선비촌이란 것을 확인시켜 준다 

     

    본격적으로 마을에 들어선다 

     

     강학당

    강학당이란 흔히 서원에서 유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는 곳을 일컫는데 대개 넓은 대청마루와 온돌방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선비들은 주로 서원을 중심으로 제자를 양성하였고 배운바를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 영주 선비들의 이러한 교육과 실천 활동은

    영주 지방 문화를 한층 더 발전시키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곳 강학당에는 문방사우가 준비되어 있어 관람객이 직접

    글을 써보면서 우리나라의 전통적 교육방식을 체험할 수 있다.

     

    김구영 가옥 

    김구영 가옥은 방들이 앞뒤로 붙어있는 양통집으로 경상북도 지방의 대표적인 서민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_자형 초가 본채 20.49평, 헛간 5.06평 초가 홑처마 굴도리 5량가(서민주택)

     

    김규진 가옥

    김규진 가옥은 까치구멍집이다. 안방, 사랑방, 부엌, 마루 등이 한 채에 딸려있고 앞뒤 양쪽으로 통하는 집을 말하는데 지붕 양쪽

    옆면의 작은 박공부분에 구멍이 있어 부엌의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되어 있다. 초가 본채 17.29평, 변소 1.22평, 정면 3칸 측면 2칸

     

    김뢰진 가옥

    김뢰진 가옥은 까치구멍집이다. 태백산을 중심으로 강원도 지역과 경상도 북부지역에 분포하는 산간벽촌의 서민주택으로 지붕마루

    양단의 하부에 만든 까치구멍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초가 정면 3칸, 측면 2칸, 본채 17.29평, 변소 1.47평 홑처마 납도리 5량가(서민주택)

     

    김문기 가옥

    김문기가옥은 부엌, 안방, 건너방, 작은 사랑방 대청이 _자를 이루는 안채와 별도로 지어진 사랑채로 이루어진 중류층

    가옥으로 청렴하고 강직한 선비정신을 느낄 수 있다. 기와집별채 14.48평, 별채 11.23평 홑처마 납도리 일고주 5량가 팔작지붕

     

     김상진 가옥

    김상진가옥은 항상 자신을 수양하면서 늘 바른 마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던 선비들의 곧은 정신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집이다.

    ㄷ자형 기와집 본채 13.5평, 문간채 3.48평, ㄷ자형를 중심으로 정면에 마루를 깔고 좌우측에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

     

     김세기 가옥

    김세기 가옥은 대청을 중심으로 건너방, 사랑방, 안방, 부엌 등을 연결시킨 실용적인 구조를 지닌 집이다. 중류층 선비들이 추구하던

    합리적, 실용적 학풍을 엿볼 수 있는 집이다 _자형 기와집 본채 24.72평, 중앙에 마루를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_자형 중류주택

     

    두암고택 가람집

    두암고택 가람집은 하인과 외거노비가 기거하던 집으로 하배집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대가집에는 이런 가람집을

    많이 두고 하나의 가옥군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_자형 초가 본채 9.85평, 별채 5.25평, 문간채 6.34평 겹처마 굴도리 5량가

     

    만죽재 고택

    만죽재(晩竹齋)는 옛 선비들의 단아한 격식이 느껴지는 고택이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는데,

    대청을 중심으로 한 안채의 오른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왼쪽으로는 상방, 고방, 문간방이 있다. 중문 왼쪽은 사랑채로 앞면은

    낮은 기단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밖으로 돌아가며 툇마루를 놓았다. 만죽재에서는 선비의 일상생활과 함께 영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선비에 관련된 일화와 사건을 알아볼 수 있다. 이 건물은 무섬마을(문수면 수도리)의 입향시조의 박수(朴隧)가

    1666년도에 최초로 건립한 가옥으로 북부지역의 ㅁ자형 평면 구조를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ㅁ자형 기와집 정면 5칸,

    측면 5칸 본채 30.1평, 마구간채 5.4평

     

    우금촌 두암 고택

    두암고택(斗岩古宅)은 영원군수, 해미현감 등을 역임한 두암 김우익(金友益, 1571~1639) 선생이

    건립한 가옥으로 인종장씨 고택과 함께 선비촌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중심이 되는 가옥이다.

     

    인동장씨 종택

    이 집은 조선 선조 때에서 성종 때까지 사헌부 감찰, 함길도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장말손(1431~1486)의 종가이다. 문무를 겸비했던

    선비의 종가답게 무인의 집기도 비치하여 문과 무를 함께 연출하였다. 외견상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를 이루고 있는 듯 하나 구조적으로는

    독립되어 있으며 좌측의 언덕빼기에 사당을 두었음. 인동장씨 영주입향조인 장응신의 맏 손자 언상이 이곳에 터전을 열어 16c 중엽에

    건립하였다. 튼 ㅁ자형 기와집 본채 34.05평, 문간채 9.72평, 사주문 1.13평, 헛간 3.04평 사당 5.67평

     

    장휘덕 가옥

    장휘덕 가옥은 선비촌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초가집이다.

    가옥의 구성 또한 사랑방, 부엌 등 최소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가 정면 3칸, 측면 2칸, 본채 11.12평, 변소 1.37평 홑처마 3량가 ㄱ자형 민도리(서민주택)

     

    정사

    선비들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에 정사(精舍)를 짓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수행을 하였다. 이러한 정사는 마음을 가다듬고

    학문을 정진하기 위한 공간으로 자제를 교육시키거나 벗들과 더불어 시서화를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정사는 명상과 풍류를

    즐기는 별서(別墅) 즉, 오늘날의 별장처럼 사용되기도 하였다. 선비촌의 정사는 두 개의 방과 대청마루로 간소하게 만들어졌으며

    자연 속에서 이상적인 삶을 좇아 예술활동을 하였던 선비들의 모습을 집작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해우당 고택

    해우당 고택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시를 읊던 선비의 목소리가 들릴 듯한 분위기의 고택으로 선비의 기개를 느낄 수 있다.

    고종16년(1879년)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海愚當) 김낙풍(金樂豊, 1825~1900) 선생이 지은 고택으로 다양하고 조리있게 활용된

    수장공간의 모습과 넓은 대청공간이 돋보이며 여느 가옥들과 달리 안채와 사랑채가 직선형으로 배치된 점이 특이하다. 해우당 고택

     

    손자방에는 자기 수양을 위해 어릴 때부터 교육을 중시하였던 선비의 모습을 재현했다. 경북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ㅁ자형 구조

    가옥으로서 전면의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큰사랑과 아랫사랑을 두었음. ㅁ자형 기와집 6간 대청본채 44.96평, 문간채 11.71평,

     

     

    대장간

    대장간의 지역에 따라 풀무간, 또는 성냥간이라고도 하는데 풀무를 차려 놓고 쇠를 달구어서 여러 가지 연장과 기구 등을

    벼리고 다듬거나 만드는 곳이다. 이곳에 종사하는 사람은 대장장이 혹은 야장(冶匠)이라고 하는데 오랫동안의 숙련을 통해서

    체득한 담금질로 쇠의 강도나 성질을 조절하였다. 이렇게 정돈과 보존을 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옛날 사람들의 터전과 생활 모습 그리고 정신 문화를 진지하게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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