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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암사
    일탈/여행사진 2014. 6. 2. 22:00

    순천역 앞에서 1번 버스를 타고 선암사로 갔다. 버스 종점이 바로 선암사 주차장이였다.

    비포장 맨땅의 흙을 밝고 걸어서 들어가는 숲그늘 길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요즘 웬만한 사찰 가는 길들은

    거의 포장을 해서 팍팍한 반면, 이렇게 고즈녁하게 흙을 밟고 걸어보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다. 다른 절의

    일주문 있을 즈음에 나타나는 강선루, 조금 더 가다보면 계곡에 놓안 무지개다리 ‘승선교’ 그리고 더 들어가서

    ‘삼인당’을 지나가면 선암사의 일주문이 나오는데. 바로 경내와 바깥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순천 1번 버스 시간

           순천발/ 06:00, 07:00, 07:40, 08:30, 10:25, 11:20, 12:20, 13:10, 14:20,

           15:05, 06:05, 17:10, 18:00, 19:00, 20:05, 21:20, 22:20

    선암사발/ 06:00, 06:20, 07:05, 08:05, 08:50, 09:40, 11:35, 12:30,

                           13:30, 14:20, 15:30, 16:15, 18:20, 19:10, 20:10, 21:10, 22:20

     

    백제 성왕 7년인 529년에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절을 짓고 해천사(海川寺)라고 부른 것이 선암사의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남북국 시대에 와서 도선이 선암사를 창건하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다. 고려시대에 의천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천태종의 본거지로 번창했으나, 대한불교조계종과 태고종의 오랜 분규 과정에서 선암사의 소속을

    놓고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사찰 재산권을 둘러싼 대립으로 불상 바꿔치기에 이은 폭력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다.

     

    선암사는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 번지로 조계산(해발 884m) 장군봉 아래에 위치해 있다. 사찰 창건에 대해서는 백제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창건했다고 하는 설,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대각암에 머물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여 그 규모가 법당 13동, 전각 12동, 방 26개, 산내 암자가 19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침략으로 전각이 불에 타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정유재란 이후 1660년대 경잠(敬岑),

    경준(敬俊), 문정(文正)대사가 8년 동안에 걸쳐 중창불사를 하여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숙종 7년(1681년) 호암약휴(護巖若休)가 제4차 중창불사를 주도하여 원통전광유상, 53불전, 대법당 오십천,

     

    승선교 등 잇따른 불사가 이루어졌다. 순조23년(1823년)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 명부전 등이 소실되어 다음해에

    해붕(海鵬)과 눌암(訥庵), 익종(益宗) 세 대사가 제6차 중창불사를 하고 일시 고쳐졌던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에서

    조계산(曹溪山)으로 사찰 이름을 해천사(海川寺)에서 선암사(仙巖寺)로 다시 회복하여 명실상부한 옛 면모를 되찾게 되었다.

     

    해방이후 1948년의 여순사건과 한국전쟁(6•25)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비구, 대처승간의 대립으로 일부 건물이 유실되기도

    하였으나 최근대부분의 전각이 수리되었다. 승선교를 비롯한 지정문화재 24점(국가지정 12점과 도지정 12점) 이외 선암사

    성보박물관에는 2,000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선암사 가는 길 이쯤이면 일주문이 서 있어야 할 자리인데 여기엔 강선루가 서 있다.

     

     

     

     

    승선교(보물 제 400호)

    이 다리는 조선 숙종39년인 1713년에 호암대사가 축조한 홍예교(무지개다리)로서 당초 자연 암반 위에 설치하였으나

    자연 암반에 절리(균열로 떨어져 나가는 현상)가 발생하여 승선교를 세운지 290년이 지난 때인 2003년 11월 ~ 2004년 6월

    완전 해체하여 자연 암반부에 석재(지대석)를 보충하는 대대적인 수리를 하였다.

     

    삼인당

     삼인당은 긴 알 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선암사 사적에 따르면 신라 경문왕2년(862)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축조한 것이라 전한다. 삼인(三印)이란 제행무상(諸行無常印), 제법무아(諸法無我印), 열반적정(涅槃寂靜印)의 삼법인(三法印)을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것은 변하여 머무른 것이 없고 나(我)라고 할 만 한 것도 없으므로 이를 알면 열반에 들어 간다라는 불교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이런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

     

     

    선암사 일주문

     이 일주문(一柱門)은 누문(樓門)인 강선루(降仙樓)를 지나 처음 들어서게 되는 문으로 1719년에 세워진 것이다<조계문창건상량문>에

    의하면 원래의 건물은 화재로 인해 없어지고 1540년에 다시 세웠으나 병자호란으로 피해를 당하였다가 1719년에 또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단층 맞배기와집(옆에서 볼 때 ‘八’자 모양)으로 원형의 주춧돌 위에 배흘림기둥(기둥의 중간이 굵고, 위 아래로

    가면서 가늘게 된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 3군의 공포를 배치해 놓은 다포식(多包式) 건물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선암사 경내로 바로 들어 간다

     

    종각

     

    대웅전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신 건물이다. 이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것을 현종 원년(1660년)에 다시 지었고,

    영조 42년(1766년)에 또 화재를 만나 없어졌다가 순조 24년(1824년)에 또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치마 팔작집(옆에서 볼 때 지붕이 여덟 ‘八’자 모양)으로 기단을 기둥면석 감돌로 조립하고 그 위에 다시 주춧돌을 놓아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로는 창방과 평바을 두었고 그 위로 공포(처마를 받치는 부재)를 짜 올렸는데 출목수는 밖 3출목,

    안 4출목으로 그 모습이 장중하고 화려하다. 내부는 층단을 이룬 우물천장(우물 ‘井’자 모양)으로 장엄하게 단장되었으며 단청도

    비교적 선명하다.

     

    선암사 3층 석탑(보물 제 395호)

     

     

     

     

     

     

     

     

    선암사의 와송

    선암사 경내에 있는 소나무로서 두 가지가 한 가지는 위로 솟구치고, 또 다른 가지는 바닥쪽으로 누워있다

      

     

     

    선암사의 화장실

     요새 말로 화장실이지 옛날에는 '뒷간, 통시, 정랑, 변소 등 다양한 이름이 있었다.

    여기는 그보다 더 오래 전에 불리던 이름으로 씌어 있어 선암사가 천년고찰인 것을 짐작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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