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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랑 9월, 10월 호 잡지에 실린 둘째 아들네 이야기여 유/나의 이야기 2014. 1. 13. 13:22
농촌 대안교육을 위해 ‘자연’을 선택하다
충북 영동 물한리 ‘신상범 김희정 부부’
최악의 여름이었다. 최장 기록을 경신할 장마와 그 뒤에 찾아 온 폭염으로 모두가 지쳤다. ‘풀이 죽었다’는 말이
실감나는 여름이었다. 산과 계곡마다에는 여전히 더위를 피해 찾아 든 사람들로 가득하다. 예부터 물 좋기로 소문난
충북 영동의 물한계곡 역시 예외는 아니다. 물이 차다(寒)는 의미의 물한리로 접어들자 골골마다에는 형형색색의
텐트들이 보이고, 나무그늘 아래에는 느긋한 오수를 즐기는 이들이 한 자리씩 치지하고 앉아 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만큼 더위를 피하기에는 더 없이 좋아 보인다.
♣ 자연으로 돌아가자 부부는 ‘通‘했다
백두대간 삼도봉과 민주지산 각호봉이 부챗살처럼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물한리에서 참 괜찮은 부부를 만나고 왔다.
신상범(41) 김희정(38)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부부는 서울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십 수 년 째 농촌대안교육의 열악한
현실 속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부부를 만나기 위해 상촌면 소재지가 있는 임산리로 향했다. 부부의 집은
물한리에 있지만 지역아동센터 겸 공부방이 있는 임산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상촌은 행정상으로
충청북도에 속하지만, 경상북도 김천과 전라북도 무주가 맞닿아 있는 충북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오지 중의 오지이다.
유명한 ‘영동호두’의 대부분이 이 상촌면에서 생산된다. 또 곶감과 포도의 주산지로 때 맞춰 출하를 시작한 ‘영동포도‘가
도로변에 좌판을 펼쳤다. 수확의 계절이 가까이 왔건만 여전히 한여름 날씨다. 마침 인근 매곡면에 있는 체육관에서
아이들 배드민턴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물놀이를 하는 시간이라 가까운 계곡에서 그들을 만났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바탕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마치 한 가족 같다.
신상범 씨는
“도시와는 달리 특별한 놀이시설이 없다보니 학교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함께하다보니 그래요“라고 했다.
물놀이를 미친 아이들과 신상범 씨가 공부방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 김희정 씨가 큼지막한 그릇에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를 타서 나온다. 영락없는 ‘가족’의 모습이다. 교사도 학부모도 모두 도시로 떠나기를 원하는데, 굳이 오지마을에
둥지를 튼 연유가 궁금했다. 혹시 고향이 아닐까 물어 봤지만,
신상범 씨는 부산, 김희정 씨는 경북 의성이 고향이라고 했다. 단지 대학시절부터 연을 맺어 온 대안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함께 내려 왔다고 한다.
“이곳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죠, 따지고 보면 어디에 살든 새로운 삶이 있더라고요.
우리 부부처럼 젊은 사람들은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 또한 무궁무진하고요. 생각의 차이죠.“
사범대 출신의 김희정 씨와 국문학과 출신의 신상범 씨는 대안학교인 물꼬학교 교사였다. 부부가 이 학교 교사가
된 것은 그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덕분에 부부의 연을 맺었고, 여전히 농촌 대안교육의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김희정 씨는 대학시절부터 서울에 있던 물꼬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곳에서 신상범 씨를 만났고, 졸업 후 물꼬
학교 교사의 길을 걸었다. 그 후 근무하던 학교가 마을공동체 생활을 위해서는 농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영동으로 옮겨 오면서 함께 내려왔다. 산골생활에 대한 계획은 따로 없었지만,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부부는 2004년 결혼을 하고, 다시는 도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상범 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모두가 외면해버린 농촌교육의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가장 컸어요. 여긴 산골이라 대부분의 집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죠. 이곳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에 비해 더 외로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요. 또 한 부모나 조손, 다문화
가정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 자연은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부부는 결혼 전인 2003년부터 물한리에서 공부방을 운영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 던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찾아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시작에 불과했지만, 부부는 그럴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물론 지역
주민들의 도움도 컸다. 우선은 자신의 이이들을 위한 일도 되지만, 더불어 살아야한다는 자연의 섭리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자리에서 살고 싶었고,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농사도 꾸준히 짓고 있다.
농촌에서 터를 잡고 살기 위해서는 농사가 가장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했다. 지역 특산물인 곶감과 가족이 먹을 고추, 채소 등 농사 경험은 없었지만 주민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꾸준히 하고 있다. 또 우렁이 농법을 이용한 논농사도 짓고 있다. 600평 정도지만, 가족이 먹고도 남아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보내고 있다. 손수 지은 농산물은 특별한 판로가 없기에 도시의 지인들을 통해 판매한다.
곶감과 야생차, 효소 등 정성이 깃던 상품은 꽤 인기 있다고 한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택한 후배를 바라보는
대학시절 선배들은 적극적인 후원자다. 이따금 찾아오기도 하고 농촌교육을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처음 대안학교
교사의 길을 반대했던 김희정 씨의 부모님은 농사의 조언자가 되었고, 현직 교사인 작은어머니는 퇴직 후 부부와
함께 살 계획도 갖고 있다. 여전히 어려움은 많지만,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고 한다.
공부방과 지역아동센터 운영비 충당을 위해 신상범 씨는 과외를 김희정 씨는 요양보호사 일을 겸하고 있다.
김희정 씨는 1인3역을 하고 있지만 묵묵히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아이들 때문이라고 했다.
“마을 아이들이 혼자 노는 것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아이들 속에서 키우고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내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공부방을 운영해요. 8살인 민서와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5살
현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죠, 대신 우리 아이들이 아이들 속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죠.“
부부에게는 영동에 처음 내려오면서부터 생각했던 농촌대안교육이 있다. 그것은 ‘어린이농부학교’다. 1년 동안 함께
농사를 짓는 이 프로그램은 도시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농촌 아이들에게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농촌에 살고 있는
아이들도 그의 부모들이 무슨 농사를 짓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스마트폰 등
온갖 매체가 난무하는 세상에 농촌도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린이농부학교’다. 자연의 순리를
철학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그 시작으로 지난 1년 간
지금 운영하고 있는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시도를 했다. 이른 봄 땅을 일구고, 고사리 손으로 씨앗을 뿌렸다. 물도 주고
새순이 돋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후 열매를 맺어 수확을 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하면서 조금은 다른,
사람 간의 너그러운 관계를 배우고, 자연에서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올 해는 배추도 심어서 김장도 함께
할 생각이다. ‘어린이 농부학교’는 계속 꾸려 갈 계획이다. 학부모나 지역주민들이 동참하는 ‘지역문화센터’로 확대해서
낮 시간에는 어르신들, 오후에는 아이들, 저녁시간은 학부모가 모여 산촌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부부의 꿈이다.
어린이 농부학교 카페, http://cafe.daum.net/galmaru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최상석 http://www.nulsan.net
~ 월간 산사랑(한국산지보전협회) 9월, 10월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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