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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물이 만나 하나가 되는 길
    일탈/가보고 싶은 곳 2011. 7. 21. 22:43

     

    그 두물머리를 걸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월 발표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에 ‘두물머리길’을

    넣었다. 이 닳고 닳은 수도권 관광지와 문화생태탐방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구간을 꼼꼼히 검토

    하고서 생각이 바뀌었다. 훤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장소여도 다른 방식으로 체험하면 전혀 다른 장소로

    인식되게 마련이다

     

     

    ♣ 생태, 역사, 낭만

    두물머리길은 경기도 양평군 양수역에서 시작해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들른 뒤 옛 양수대교를 건너 남양주시 다산 유적지로 내려갔다가 옛

    중앙선 철로를 따라 옛 팔당역까지 이어진다. 세미원, 두물머리, 다산

     

    유적지, 옛 중앙선 철로 등 독립된 각각의 명소가 15㎞ 길이의 길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진다. 이때 길의 주인은 오로지 강이다. 그러니까 두물머리

    길을 걷는 건 남한강변에서 걸음을 뗀 다음 북한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고

     

    마침내 두 물이 합쳐 한강을 이루는 현장을 목격하는 일이다. 그래서

    두물머리길의 테마가 연인의 길이다. 두 물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현장을, 둘이지만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연인이 걷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미 두물머리나 옛 중앙선 철로는 이름난 데이트 명소이니 뜬금없는

     

    테마는 아닌 듯싶다. 길은 하나지만 테마는 여럿이다. 흔치 않은 경우다. 예를 들어 세미원과 두물머리는 생태

    체험장이고, 다산 유적지는 역사 탐방 명소며, 옛 중앙선 철로는 낭만 여행의 성격이 짙다. 색깔이 뚜렷한 세

    테마가 하나의 길 안에 모여 있어 흥미롭다. 물론 한강 덕분이다. 하여 두물머리길은 삼등분 정도로 쪼개서

     

    걷기를 권한다. 15㎞나 되는 길을 한달음에 걷는 건 아무래도 무리로 보인다. 옛 팔당역에서 지금은 문을 닫은

    능내역까지가 꼬박 5㎞ 철길이다. 능내역에서 능내리 연꽃마을을 거쳐 다산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오는 거리나,

    양수역에서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둘러보는 거리도 얼추 비슷하다.

     

    ♣ 연인을 위한 길, 낭만을 위한 걸음

     

     

    양수역에서 10분 거리에 세미원이 있다. 새미원은 양수대교

    아래 널찍한 대지에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수변공원이다.

    워낙 예쁘게 만들어놔 주말 평균 70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세미원은 연꽃을 시험 재배하는

    연구단지다. 연구단지치고는 너무 예뻐 정체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창덕궁 장독대를 재현한 항아리 분수 등 재미있으면서

     

    의미도 있는 시설을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두물머리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다. 두물머리 끄트머리에 서 있는,

    500년 묵었다는 느티나무는 하도 낯익은 풍경이어서 이제는 물릴 지경이다. 그래도 예까지 온 걸음, 두물머리를

    건너뛸 수는 없다. 세미원과 두물머리는 반나절 걸음이면 넉넉히 둘러볼 수 있다. 양수역에서 가까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도 편하다. 다산 유적지에서 능내역 사이에 능내 연꽃마을이 있다. 팔당댐 바로 위에 있는 마을이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인데, 연꽃마을로 특화하면서 팔당호를 옆구리에 끼고 도는 탐방로를 만들었다. 이 길은

    원래 남양주시에서 조성한 ‘다산길’에 속하는 구간으로, 양평군 일대와 달리 길목마다 이정표가 잘 세워져 있다.

     

    한적하고 오붓하기까지 하니 막 시작한 연인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중앙선 옛 철로. 뭐, 낭만의 대명사라 하겠다.

    능내역부터 걷다 보면 유명한 카페 ‘봉주르(031-576-7711)’가 나오고 왼쪽에 팔당호를 끼고 1㎞ 가까이 더 걸으

    봉인터널이 보인다. 이 터널이 재미있다. 250m 길이의 터널인데, 사람이 들어가면 은은한 조명이 발 아래에서

    켜진다. 철길 침목을 걷어내고 자갈을 덮는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불편한 게 흠이다.

     

    ♣ 다산 유적지는 혼자 걸어라

     

    남양주시 조안면 마현마을, 두물머리 건너편 물가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생가와 묘가 있다. 이 일대가 다산

    유적지다. 생가의 이름은 ‘여유당(與猶堂)’. 1800년 다산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서 살 때 지은 당호다. ‘여유당’이란

    이름엔 ‘살얼음 건너듯이 조심하고 경계하며 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다산은 이듬해 강진으로 유배를 갔고 18년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생가 바로 뒤 언덕 위에 다산의

    묘가 있다. 하필이면 그는 결혼 60주년 기념일에 죽었다.

    죽기 전에 다산이 남겼다는 “내가 죽으면 지사(地師)에게 묻지 말고 우리집 뒷산에 묻어라”라는 말이

     

    내려온다. 묘지 아래 있는 ‘묘지명’은 다산이 쓴 것으로, 다산 말년의 자서전이라 할 만한 중요한 문장이다.

    다산 유적지는 혼자서 가길 권한다. 이왕이면 다산을 생각하며 걷기를 권한다. 당대 최고 석학으로 통했던

    그는 하루아침에 사교(邪敎)를 숭배하는 역적으로 몰린다. 신유사옥이 터졌던 1801년 다산은 사교 그러니까

     

    천주교에서도 역적이 된다. 형틀에 묶여 그는 매형 이승훈과 조카사위 황사영의 죄목을 일러바친다.

    기록에 따르면 다산은 천주교인 색출법을 알려주었고, 포도청은 다산이 알려준 방법으로 천주교인을 검거

    했다. 신유사옥으로 다산의 형 약종과 이가환·황사영·권철신·이승훈, 청나라 신부 주문모 등 100여 명이 처형

     

    당했다. 그러나 다산은 또 다른 형 약전과 함께 살아남는다. 그 참극의 현장에서 형제만 살아남은 이유를

    역사는 증언하지 않았다. 강진 생활 18년 동안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는 다산도 그때 포도청에서의

    일만큼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했던 걸까. 아니면 다산의 자백처럼 "잠시나마 사악한

     

    무리의 꼬임”에 끌렸던 것뿐일까. 그러나 그는 영세를 받은 엄연한 신자였다. 삶이란 어떤 위대한 인물도

    차마 다 발설하기 힘든 비루한 것일지 모른다. 아니면 부끄러운 것이든지. 마흔 살 다산의 선택을 생각하며

    걷는 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 길정보

     

    두물머리길은 조성이 덜 됐다. 양평군 쪽에는 아직 이정표도

    없고, 남양주시 쪽에는 군데군데 공사 중이어서 어지럽다.

    그래도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를 잇고 있어

     

    원래 서 있던 이정표만 따라 걸어도 헤매지 않고 걸을 수 있다.

    남양주 쪽은 남양주시가 조성한 다산길이 이미 알려져 있어서

    인지 의외로 걷는 사람이 많다. 세미원(www.semiwon.or.kr)에서

     

    입장료(3000원)를 내면 양평 특산품을 준다. 다른 곳에서는

    입장료가 없다. 용산역~양수역 전철요금은 1600원. 양평군청

    문화관광과 031-770-2066, 남양주시 문화관광과 031-590-4598.

                                                                                  ~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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