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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도 역사가 있다쉼 터/잠깐 쉬며.. 2009. 11. 13. 22:09
우리는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지만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이라고 불러왔고, 지금은 우리 땽을 통행하지 못해 중국 땅을
밟아서까지 백두산을 애써 찾아 오르고 있다. 백두산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화산체이다. 그것도 격렬한 폭박적인 분화를
거쳐 화산체 정상부가 함몰되어 생긴 칼데라에 물이 채워진, 해발 고도가 아주 높은 천지라는 칼데라 호수를 머리에 이고
있는 산이다. 한라산 역시 화산분화 결과 전형적인 방패 모양의 화산체로 솟아있고, 그 정상에 백록담이라는 화구호가 형성
되어 있다. 무슨 조화인지 국토의 남과 북에 화산활동으로 생긴 화산체가 버티고 있고, 동해 끝에 역시 화산활동으로 생긴
울릉도와 독도가 국토의수호신인 양 거친 바다를 외롭게 지키고 섰다. 이들을 연결시켜 보면 우리 국토를 둘러싸는 불의
고리인 셈이다. 우리 땅엔 불과 관련이 있는 산들이 많다. 금강, 설악, 월악, 속리, 계룡, 월출, 관악, 북한, 도봉, 팔공, 금정
등의 산들은 화강암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는 뜨거운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서서히 굳어서 만들어진 암석이다.
무등, 내장, 선운, 보현, 주왕, 내연, 가지, 운문, 천황, 재약, 영축, 신불, 천성 및 부산의 여러 산들은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니 역시 불고 직접 관련이 있다. 인간사에 역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에도 자연사라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산에도 당연히 역사가 있을 것이니 일종의 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영산으로 알려져
있는 지리산, 덕유산, 오대산, 태백산 등은 앞에 언급된 것과 또 다른 과정으로 만들어진 산이고 그 산을 채우고 있는 암석
들의 역사 또한 유구하기 그지없다. 설악산이나 금정산 등을 이루고 있는 화강암질암들은 중생대 쥐라기 내지 백악기,
대략 2억 년 전에서 6000만 년 전 사이에 생성된 것이고, 영남 알프스 산군을 비롯한 화산활동 결과 만들어진 암석들은
그 연대가 약 1억 년에서 6000만 년 전이다. 게다가 한라산이나 백두산, 독도, 울릉도 등은 신생대 제4기의 화산체들이며
역사시대에도 분화를 했던 기록이 남아있고, 오래 되어도 불과 200만 년 이내이니 이 땅에서 가장 젊은 땅덩어리인 셈이다.
지리, 덕유, 태백, 소백 등은 무려 20억 년 전후의 연대를 가진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그 이전에 있었던 화성암이
나 퇴적암들이 지하 심부에 매몰되어 높은 온도 아래 그 역사를 자랑하는 이 땅의 사람들은 가장 역사가 짧은 백두와 한라를
이 땅의 으뜸가는 산으로 또 민족의 영산으로 떠받들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영남으로 좁혀보면 1억2000만 년에서 1억 년
전 사이엔 퇴적물들이 유입되어 매몰되는 퇴적분지였던 곳이 그 이후의 격렬한 화산활동으로 도처에 폭발적인 화산 분화가
일어났으며 곳곳에 백두산 천지보다 규모가 훨씬 큰 칼데라가 생겼고 그 아래 지하에 뜨거운 마그마가 뚫고 들어앉아 용트
림을 하였으니 그 이전에 생성되었던 퇴적암들이 대부분 그 열에 빵 굽히듯 굽혀 아주 단단한 암석으로 변하였다. 태종대,
송도, 엄궁, 황령산 기슭의 줄무늬(층리) 있는 암석들이 바로 마그마 열에 굽혀 변성된 혼펠스란 아주 단단한 암석이다.
해운대 장산, 영도 봉래산, 구덕산, 황령산을 이루는 암석을 보면 내부에 암석 파편들이 많이 있었음을 말없이 알려주고
있다. 이제 부산을 비롯한 영남의 산들을 오르면 발바닥이 뜨끈뜨끈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류 역사에 많은
나라들이 흥했다가 소멸되었고 그 원인을 주로 외침이나 그 나라 내부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로 치부해 왔다. 그러나
과학 문명이 현재와 판이하게 달랐던 그 시대에 치명적인 자연재해 역시 자연 현상과 달리 왕이나 지배자의 부덕, 또는 하늘
의 뜻으로 보았을 것이니, 이젠 문명사(또는 역사)와 자연사의 관련성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예컨대 발해
의 멸망을 백두산의 화산 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전혀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다. 이 지역에 철기문화
와 함께 우뚝 섰던 가야국이 갑자기 기울어졌던 멸망사 역시 이 땅덩어리의 역사(자연사)와 무관한 것인지 좀 다름 시각으로
되새겨 볼 여지는 없을까.
이상원(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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