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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광에 담긴 얼쉼 터/잠깐 쉬며.. 2009. 10. 10. 21:56
영미권의 대표 사전은 ‘옥스포드 영어사전’이다. 1857년 빅토리아여왕 때 편찬이 시작돼
150년간 개정을 거듭해 61만여 개의 낱말이 실렸다. 이 사전의 신조어 수록은 세계 언론
의 뉴스거리, 맥도날드가 아르바이트생을 착취하는 것에 빗대 저임금에 시간제 일을 지칭
하는 ‘맥잡(Mcjob)'. 비키니 노출선을 따라 시술하는 제모법인 ’비키니 왁스(bikini wax)‘
등이 최근에 실린 단어. 한자문명권엔 ‘강희자전(康熙子典)’이 있다. 청(淸) 강희제의 명에
따라 장옥서, 전정경 등이 1716년 완성한 자전으로 전 42권에 4만 9030자가 담겼다.
경사백가(經史百家)와 중국 역대 왕조의 시인, 문사의 저술을 폭넓게 망라한 예문도 실렸
다. 이 자전이 한, 중, 일 자전의 뿌리다. 그럼 우리의 대표 사전은...말할 것도 없이 한글
학회가 펴낸 ‘우리말 큰사전’이다. 1947년10월9일 한글날 첫 권이 나와 1957년 여섯째
권이 완간됐지만 시작은 1929년 조선어사저편찬회의 결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인
을 위한, 조선인에 의한 조선어사전‘을 만든다는 큰 뜻은 일제하의 온갖 탄압을 겪였다.
1942년 33명의 어학자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른 ‘조선어학회사건’이 대표적이
다. 이윤제, 한징 선생은 옥사했다. 풀간 과정도 극적이다. 해방 후 풀려난 이극로, 최현
배, 이희승 선생 등이 사라진 사전 원고를 애타게 찾다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 처박힌
원고뭉치를 찾아냈다. 을유문화사가 두 번이나 출간을 거절하자 이극로 선생이 세 번째
엔 책상을 치며 “나라문화 기둥인 한글사전을 외면해서야 될말이냐!”고 호통쳐 빛을 보게
됐다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고려대 국어사전’을 펴냈다. 1억 개의 어절을 뒤져
표제어 38만6889개를 골랏다. 17년 각고 끝에 쌓아올린 문자 그대로 금자탑(金字塔)이다.
컬러링, 악플, 얼짱, 꽃미남 같은 신조어도 4만 개나 실렸다. 우리말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내놓은 한글학자들의 희생과 노고로 우리는 이처럼 가멸한 말글살이를 누리고 있다.
‘말광’, 즉 말의 창고인 사전에 담긴 선열의 얼을 되새기는 오늘은 563돌 한글날이다.
강동수~국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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