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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년우환
    쉼 터/잠깐 쉬며.. 2009. 9. 30. 22:32

    고래로 우리네에게 쌀만큼 중요한 산물도 없을 터이다. 7000년쯤 전 인도를 기점으로 한반도에

    전래된 쌀은 먹을거리를 떠나 생활과 문화이며 신앙이자 정치였다. 쌀농사의 풍, 흉에 따라 임금

    자리가 위태로워지기도 하고 쌀의 수탈과 독점이 민란의 원인이었던 적이 다반사였다. 쌀이

     

    담긴 성주단지를 안방 시렁에 고이 모셔놓고 지성으로 빌던 것은 두어 세대 전만 해도 낯익은

    풍경이었다. ‘산골 큰 애기들은 쌀 서 말을 다 못 먹고 시집간다’는 옛말은 찢어지게 가난한 살

    림을 비유한 것이지만 쌀이 그만큼 귀물이었다는 이야기, 며느리가 밥 짓다 뜸 들었나 보느라

     

    한 술 떠먹는 걸 본 시어미가 몽둥이로 뒤통수를 때렸다. 밥을 입에 문 채 죽은 며느리의 무덤

    에서 밥알 모양의 꽃잎을 가진 풀이 돋아났다. 그레 ‘며느리밥풀꽃’이다. 쌀은 곧 천심이니 흉년

    엔 나라는 물론 각지의 부가옹(富家翁)들이 쌀을 풀어 기민을 돌보는 법이었다. 12대 300년에

     

    걸쳐 만석꾼으로 이름 높았던 경주 최부자집 가훈의 하나가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경북 인구의 1할이 이 집 쌀로 목숨을 구했다고,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엔 ‘타인

    능해(他人能解)’, 즉 누구나 쌀을 가져가도 좋다는 글귀가 붙은 커다란 뒤주가 있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쌀은 곧 나눔의 상징이었다. 그 쌀이 남아돌아 골칫거리다. 지난해 484만t이란 기

    록적 대풍으로 재고량이 81만t이나 돼 창고가 없는 터에 올해도 460만t 이상을 수확할 것이라고,

    의무 수입물량도 30만t이 넘는다. 40년 전만 해도 보릿고개 넘기느라 기진맥진했던 나라였으나

     

    상전벽해다. 소비도 매년 줄어 올해는 1인당 소비량이 한 가마도 채 안 되는 74kg에 그칠 것이

    라고. 끙끙 앓던정부가 10만 t을 동남아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자 남에게도 주는 쌀을 북한엔

    왜 못 주느냐는 소리가 나온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데다 일부 보수단체가 군량미 전용설을 제기

     

    한 데 따른 부담 때문이겠지만 처치 곤란인터에 북한동포 구휼에 인색할 이유가 없다. 남북관계

    에 윤활유가 될 수도 있는 만큼 정부는 대북 쌀지원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일이다.

                                                                                                     강동수 국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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