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르지즈족쉼 터/잠깐 쉬며.. 2009. 8. 31. 08:51
거대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운데 두고 위쪽으로는 천산산맥이 아래쪽으로는 곤륜산맥이 병풍을
둘렀다. 위구르어로 ‘타클라마칸’이란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이란 뜻이다.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은
사시사철 흰눈을 이고 있다. 산골짝으로 골골이 흘러내린 눈 녹은 물이 산자락에서는 제법 그럴듯한
강이 되어 타클라마칸 사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러나 산자락과 사막이 만나는
곳에는 풀과 포플라 나무가 자라는 오아시스가 생겨나 이곳에 인간들이 발 붙이고 살아간다. 오아시
스의 규모는 오로지 물의 양이 결정한다.
♣ 신라의 고승 혜초도 울며 넘은 실크로드
이 천산산맥과 곤륜산맥 산자락에 점점이 자리잡은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길이 실크로드다. 투루판
에서 천산산맥 산자락으로 가는 길이 서역북로, 곤륜산맥 산자락으로 가는 길이 서역남로가 되지만,
이 길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서쪽 끝 가장 큰 오아시스 카슈가르에서 서로 만난다. 카슈가르는 떠들
썩하다. 실크로드를 통해 일방적으로 중국의 비단만 비자틴제국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종이,
향신료, 도자기 등이 비단과 함께 서역으로 가고 서역에서는 금은 세공품, 말, 칠, 건과, 씨앗들이 중
국으로 들어갔다. 단순히 상품만 오고간 것은 아니다. 동서양의 문화와 문명이 교류되고 종교도 실크
로드를 따라 전파되었다. 중국에서 서역으로 가는 대상들은 카슈가르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실크로
드 최대의 난코스를 만나게 된다. 눈 덮인 천산을 넘어 파미르 고원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길은 거칠고 산마루는 엄청난 눈으로 덮였는데, 험한 골짜기에는 도적떼가 들끓는구나.
새는 날아가다가 깎아지른 산을 보고 놀라고 사람들은 좁은 다리 건너기를 두려워하는구나.
평생에 울어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눈물을 천줄기나 뿌리도다.”
<왕오천축국전>에서 신라의 고승, 혜초가 읊은 오언시다. 약관 16세에 중국 광주에서 배를 타고
인도로 간 혜초는 4년 동안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구도 여행하고, 돌아올 땐 실크로드를 따라 걸어
왔다. 파미르 고원을 지나자 앞을 가로막은 천산산맥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혜초
는 이렇게 눈물을 뿌리며 시 한수를 지었다. 결국 파미르 고원에서 천산을 넘어 사리콜 계곡을 타고
내려와 마침내 당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카슈가르에 당도했다. 그의 나이 20세 때인 727년 가을
이었다. 혜초가 파미르 고원에서 천산을 넘어 카슈가르까지 오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릴 만큼 천산은
높고 사리콜 계곡은 굽이굽이 끝없이 이어졌다. 천산을 넘어가는 이 길은 실크로드 중에서도 가장
험난한 구간이었다. 1300여 년이 지난 지금, 혜초를 겁주던 도적떼는 간 곳 없고 건너기가 두려운
좁은 다리도 자취를 감추었으며, 신장자치구와 파키스탄을 잇는 도로가 이어져 자동차가 천산을
넘어 다니지만, 아직도 길은 험하고 산마루에는 여전히 엄청난 눈이 쌓여 있다.
♣ 국적보다 삶 자체를 중시하는 키르지즈족
위구르족이 신장자치주의 주인이지만, 천산 아래 사리콜 계곡엔 키르지즈족이 살고 있다. 키르지즈족은 원래 시베리아에서 살다가 10세기에서 15세
기에 걸쳐 아시아로 이주한 종족으로,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먼 옛날 베링해협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을 때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아메리카 인디
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천산산맥 너머 그들의 나라 키리지스탄이 있지만, 이곳 사리콜 계곡에 살고 있는 키리지즈족은 행정구역상 신장자치주
민으로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든 키
르지스탄이든, 신장자치주가 독립을 하여 위구
르스탄이 되든, 우리는 상관할 바 없어. 조상 대
대로 살던 땅에서 조상들처럼 살아갈 따름이니까.” 66세 술라이만 씨에게는 지붕의 옥수수가
중하지 국적이 중한 게 아니다. 혜초의 발자국이
점점이 박혀 있는 천산 아래 사리콜 계곡, 골골이 주름진 민둥산 아래 외딴집은 대가족이다.
이 집 가장 술라이만 노인과 부인 톳티한(60)의 4남3녀 자녀 중 2남2녀는 결혼, 15명의 손자손녀를
두었다. 딸은 시집을 가면 집을 떠나지만 아들은 장가를 가도 세간 나는 법이 없다. 집을 달아서
늘려 방을 새로 만든다. 이곳은 일년 강우량이 우리나라 하룻밤 비에도 못 미치는 지독한 건조지역
이다. 바다가 먼 내륙지방이라 이곳까지 찾아오는 구름도 적은데, 그나마 모든 구름은 천산에 걸려
산꼭대기에 눈으로 쌓인다. 건조한 이곳에서는 지붕을 흙으로 편편하게 덮어 놓아도 비가 집안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다. 여름혹서, 겨울혹한에 흙집만큼 좋은 집도 없다. 집안 내부는 벽과 바닥이 온통
카펫으로 도배되어 있다. 바닥 카펫은 그들이 사용하는 것이고 벽을 덮은 카펫은 보온 역할도 하면
서 카펫 수집상에게 팔기도 하는 전시용이다. 이집에서는 자가용 격인 말 1마리, 그리고 소 4마리,
양 60마리를 키운다. 매섭게 추운 겨울을 나면 양털을 깎는다. 이 양털을 손질해서 실을 짜고 염색을
하고 카펫을 짜는 것은 여자들 몫이다. 봄이 되면, 남자들은 양떼를 몰고 몇날 며칠 걸어서 산위로
올라간다. 봄볕이 눈을 녹이고 풀이 돋아나는 곳에 그들은 텐트를 치고 여름을 난다. 천산의 겨울은
일찍 찾아와 10월 하순이 되면 그들은 양떼를 몰고 집으로 내려온다. 양들은 오동통하게 살이 찌고
털은 길게 자랐지만, 집을 떠나 산에서 양떼를 돌보다 내려온 아들들은 꺼칠하게 말랐다.
석탄 난로가 후꾼후꾼 달아 오른 집안에서 발 뻗고 자고,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케밥(양고기),
라그만(국수), 삼사(호박파이), 요거트(발효유)를 먹고 나면 며칠 안가 희멀겋게 살이 찔 것이다.
“이렇게 온 식구가 한 집에서 살면 고부간에, 또 시누이와 며느리가 다투는 일은 없는가?”
통역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집 여자들은 일제히 까르르 웃는다. 그때 꼬마 하나가 흙투성이 바
지로 들어오자 엄마가 아니라 시누이가 달려가 손바닥으로 조카의 등줄기를 때리고 바지를 벗긴다.
기아웹진
'쉼 터 > 잠깐 쉬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0) 2009.08.31 쿠바의 연인 체게바라 (0) 2009.08.31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0) 2009.08.30 백색(白色)에.. (0) 2009.08.30 케냐 사바나의 두 얼굴 (0) 2009.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