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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부산 영화의 거리쉼 터/잠깐 쉬며.. 2009. 8. 30. 14:31
♣ 달빛 조명아래 연출되는 시네마천국 부산 영화의 거리
부산은 부산한 도시다. 남포동과 서면과 같은 부산의 번화가 거리를 걷고 있자면, 북적대는 사람들
과 끝없이 늘어선 현란한 간판, 그리고 이곳의 억양 센 사투리에 어느새 정신을 빼앗기고 만다.
부산은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연예인 노홍철을 연상케 한다. 노홍철은 부산스러움에도 불구
하고 꾸밈없는 쾌활함과 넘치는 에너지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그 부산함 속에
쾌활함과 넘치는 에너지가 배어있어 이 도시의 거리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부산의 거리는 가을
이 깊어지면서 더욱 떠들썩해진다. 이곳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매년 개최되는 까닭이다. 십년 째를
맞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는 2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이 몰렸다고 한다. 국내외 게스트도 6천 명이 넘으며,
취재진 규모도 1천5백여 명이나 된다고 하니 ‘부산국제영화제’는 가히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영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겠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 도시가 내뿜는 역동성이 주요 성공 동력중 하나일 터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화만 보러 오는
이들은 없다. 이들은 영화와 함께 그 들뜬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이 축제에 기꺼이 참가한다. 영화제
는 영화 관계자가 만드는 것이나, 그 들뜬 분위기는 거리의 사람들, 즉 부산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이들은 외지인들에게 다른 곳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흥미
로운 축제의 마당을 만들어준다. 영화제는 남포동 PIFF(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광장에
서부터 시작한다. PIFF광장은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충무동 일원을 말하는데, 국도극장, 부산극
장, 대영시네마, 씨네시티, CGV남포 등의 극장이 한곳에 모여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영화제의
중심 거리가 됐는데, ‘영화의 거리’답게 바닥에는 유명 감독과 배우의 ‘핸드 프린팅’이 새겨져 있다.
또한 영화제 내내 영화제를 상징하는 아치와 다양한 걸개, 기념품 등을 파는 부스, 그리고 광장 곳
곳의 느티나무를 비쳐주는 은은한 조명이 한데 어우러져 흥을 한껏 돋아준다.
PIFF 광장이 가장 흥분하는 순간은 야외무대에서 스타와의 만남을 갖는 때이다. 스크린 속에서,
혹은 TV 모니터 속에서만 마주하던 스타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에 이 순간 야외무대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스타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사진기자뿐만이 아니다. PIFF 광장의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 폰을 꺼내들어 스크린 속에서 나온 스타의 자태를 자신의 모바일 폰에 담고,
또 지인에게 전송한다. 스타의 출현에 짐짓 점잔을 떨지 않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솔직하게 열광
하는 이들의 모습은 부산의 부산스러움에 대한 방증이다. 이로써 PIFF 광장의 거리는 비로소
‘시네마 천국’의 거리가 된다. 감독과 스탭은 영화 관계자와 스타이지만, 주역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부산스러운 부산 사람들이다.
이러한 부산 사람들의 역동적인 참여가 있기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는 더욱 재미있다. PIFF 광장
한 구석에는 매진된 표를 구한다는 내용을 적은 종이를 높게 치켜든 젊은이들이 진을 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기 있는 작품의 표는 순식간에 동이 나고 만다. 몇해 전 이 영화제 개막작
으로 일본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플갱어’가 상영됐었다. 표를 팔자마자 매진됐음은 물론이
다. 그런데 영화제가 끝난 몇 달 후 이 영화가 개봉돼 극장을 찾았을 때는 단 세 명의 관객만 쓸쓸히
스크린을 지켜보던 기억이 난다. 편안하게 개봉극장에서 볼 수 있음에도 굳이 영화제에서 똑같은
작품을 보려고 애쓰는 것은 작품 외적 재미, 즉 작품과 부산 사람들의 뜨거운 에너지가 화학 반응한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우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부산국제영화제’는 남포동과 더불어
해운대에서도 열린다. 그러나 해운대 고급 호텔에서 주로 개최되는 영화인 중심의 각종 행사는 남포
동의 것보다 재미가 없다. 사람들이 없는 탓이다. 남포동의 소박한 어울림이 없는 탓이다. 예컨대 억
양 센 사투리가 배제된 권위와 형식의 영화제는 부산에 어울리지도 않고, 따라서 남포동에서 해운대
로 이동한 관객들은 실망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곳에도 부산 사람들은 있다. 해운대 해변 가에 늘
어선 포장마차 촌에서 사람들의 쾌활함과 넘치는 에너지를 벗하며 마시는 술의 맛은 일품이다.
이곳에서 서툰 영화지식이지만 ‘허우샤오셴’과 ‘키아로스타미’, 우리의 ‘이만희’의 작품 세계를 논
한다면, 그것도 영화제이다. 술이 좀 과했다 싶으면 부산 사람이 되어도 좋다. 권위와 형식을 벗어
던지고 부산스러워져도 좋다. 몸이야 빠져서는 안 되겠지만, 마음만큼은 해운대 영화의 바다에
풍덩 빠져도 좋다. 달빛 조명 아래서 연출하는 나만의 ‘시네마 천국’, 이것이 부산의 거리가 우리
에게 주는 잊지 못할 가을 선물이다.
기아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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