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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名醫) 편작(扁鵲)
    쉼 터/잠깐 쉬며.. 2009. 8. 30. 14:14

    편작(扁鵲)은 춘추시대 제(齊)나라 출신으로 본래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편작이라는 별호는 그가 명성을 얻어 중국 각지를 다니며 의술을 펼 때 조(趙)나라에서 얻은

    이름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우수한 의사를 편작이라 불렀는데 진월인도 그러한 연유로 그 이름을

     

    얻게 되었으나 그에 이르러 마침내 편작은 보통명사의 수명을 다하고 고유명사가 되기에 이르렀

    다. 편작은 젊어서 객사(客舍)의 사장(舍長:여관 지배인)으로 일했는데 장상군(長桑君)이라는

    은자(隱者)가 빈객(賓客)으로 와서 묵었다. 객사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직 편작만이 장상군을

     

    특출한 사람이라 여겨 그를 극진히 대하였다. 장상군 역시 자신을 알아주는 편작의 비범함을 알아

    주었다. 장상군이 객사를 왕래한지 10여년이 되었을 때 그는 편작을 은밀히 불러 마주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비전(秘傳)의 의술이 있는데 내가 나이 들어 이제 그대에게 전하려하니 누설하지 말게."

     

    이에 편작은 그 뜻을 받들겠다고 공손히 답하였다. 장상군은 품에서 약을 꺼내 편작에게 주면서

    당부했다. "이 약을 깨끗한 이슬이나 빗물에 타서 마시고 한 달이 지나면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네." 장상군은 비전의 의서를 꺼내 모두 편작에게 주고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고 다시는 나타나

     

    지 않았다. 편작이 약을 복용하고 한 달이 지나자 담 너머의 사람이 보였고, 병자를 보면 오장 속

    의 뿌리까지도 훤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맥을 짚어 아는 체 가장하였다. 진(晉)

    소공(昭公)때 국정을 장악하고 있던 조간자(趙簡子)가 병이 들어 닷새 동안이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자 대부(大夫)들이 걱정하여 편작으로 하여금 병세를 보게 하였다. 편작은 조간자의 병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전 진(秦) 목공(穆公)도 이런 증상을 보였으나 이레만에 깨어났

    습니다. 지금 주군의 병은 그와 같으니 사흘 안에 좋아질 것입니다." 이틀 반이 지나자 조간자는

     

    과연 깨어났다. 편작의 진맥을 조간자에게 알리자 그는 편작에게 4만 무(畝:토지단위, 1무는 240

    걸음)의 전답을 상으로 내려주었다. 그 후 편작은 소국인 괵나라로 갔는데 마침 태자가 병으로 죽

    었다. 편작은 슬퍼하는 중서자(中庶子:고대 중국에서 태자의 교육과 관리를 담당하던 관리)에게

     

    태자가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물었다. 중서자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태자는 정기가 사기를 누르지

    못하여 양의 기운이 느려지고 음의 기운이 급해져서 돌연 의식을 잃고 죽게 되었습니다." 이 말

    을들은 편작은 자신이 태자를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하였다. 믿지 못하는 중서자에게 편작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하였다. "내 말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시험 삼아 태자를 한 번 살펴보십시오.

    태자의 귀에서 소리가 나고 코는 벌름거릴 것입니다. 두 다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음부에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중서자는 혀가 붙어 말을 못할 정도로 놀라 편작의 말을 괵나라 왕

     

    에게 고했다. 괵나라 왕 역시 크게 놀라 궁의 중문(中門)까지 나와 편작을 맞아들였다. "선생의 명

    성은 익히 들었소. 소국인 우리나라에 오셔서 나를 도와주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선생이

    아니었다면 내 아들은 땅에 묻혀 영원히 살아나지 못할 것이요." 편작은 태자의 병세가 급한 지경에

     

    이르러 가사(假死)상태에 빠진 것을 알려주고 치료하여 마침내 스무날이 지나자 본래의 모습으로

    완쾌되었다. 이 일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편작이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여겼다. 이에 대해

    편작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 진월인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한다. 스스로 살 수 있는 사

     

    람을 일어나게 해준 것 뿐이다."  작은 제나라로 갔다. 제 환공(桓公)은 편작을 빈객으로 맞았다.

    편작이 궁에서 환공을 배알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왕께서는 지금 피부에 병이 있습니다. 지금 치

    료하지 않으면 점점 깊이 들어가 병이 중해질 것입니다." 그러자 환공은 "과인은 병이 없소."라고 답

     

    하였다. 편작이 물러간 후 환공은 신하들에게 "의원이 돈을 탐하여 병이 없는 사람을 속여 공을 세우

    려 하다니."라고 말하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닷새 후 편작은 다시 환공을 배알하고 "왕의 병이

    지금 혈맥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더욱 위중해질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으나 환공은

     

    전과 같이 편작의 말을 무시하였다. 다시 닷새 후 편작은 환공에게 "왕의 병이 장과 위 사이까지 들

    어가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으나 역시 환공은 대꾸하지 않았다. 다시 닷새 후 편작은 환공을 배알하

    였으나 이번에는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얘기도 없이 물러나왔다. 환공이 사람을 보내 그 연유를

     

    물으니 편작은 이렇게 답하였다. "병이 피부에 있으면 탕약과 고약으로 고칠 수 있고, 혈맥에 있을

    때는 침자(鍼刺)나 폄법( 法)으로 고칠 수 있고, 병이 장과 위에 있을 때는 약주로 고칠 수 있습니

    다. 그러나 병이 골수(骨髓)에 들면 신이라 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은 것입

     

    니다." 다시 닷새가 지나 환공이 병이 들어 사람을 보내 편작을 찾았으나 이미 편작은 모습을 감춘

    후였다. 환공은 죽고 말았다. 이로 인해 편작의 이름은 중국에서 널리 퍼졌다. 편작은 한단(邯鄲)에

    가서 조나라가 부인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婦人科)의원이 되었고, 낙양(洛陽)에 가

     

    서는 주(周)나라가 노인을 공경한다는 말을 듣고 노인병을 주로 치료하였다. 함양(咸陽)에 가서는

    진(秦)나라가 어린아이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즉시 소아과의원이 되었다. 이처럼 편작은 각지의

    풍속에 맞춰 자신의 진료과목을 바꾸었다. 진나라의 태의령(太醫令:춘추전국시대 중국에서 의약

     

    행정을 다루는 최고관리) 이해(李醯)는 자신의 재능이 편작에 미치지 못함을 원망하여 자객을 보내

    편작을 찔러 죽였다.

     

                                                                                                                                   기아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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