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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일탈/가보고 싶은 곳 2009. 8. 30. 13:56
사철 푸른 전나무, 독야청청 소나무, 진짜나무 참나무, 흰옷 입은 자작나무, 옻오른다 옻나무, 다래난다 다래나무는 물론
이고 여행목적지를 알려주는 전나무가 온 산을 단풍으로 덮고 앉아 길 위에서 아침을 맞는 여행객의 눈을 붉게 물들인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바삭거리며 주저앉을 것만 같은 초라한 옥수수밭조차도 그것들과 어울려 있을 때는 단풍의 일부처럼
보일 뿐이다.
♣ 길 위에서 아침을 맞다
오대산은 기암절벽이 아찔한 악산(嶽山)이 아닌, 품이 깊은 육산(肉山)이라
사계절 모두 사람들의 발걸음을 편안하게 끌어당긴다. 특히 오대산의 넉넉한
품을 느낄 수 있는 24km에 걸친 비포장도로는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월정사든 상원사든 산 밑 절 앞에 차를 세워 두고, 하루를 꼬박 걸려
완주하고 나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길이 되는 곳이다. 첫 단풍은 오대산에서
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오대산은 그야말로 단풍이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산이다.
그렇다고 단풍이 빨리, 추하게 지는 것도 아니다. 처음의 아름다움을 간직한채
늦가을을 맞고, 예쁘게 옷을 벗는 것으로 겨울 채비를 한다. 그리고 자락마다
자리한 산사의 아름다움으로 오대산의 단풍은 더욱 붉다. 길이 이러하니, 길보다
마음이 먼저 가을 절경이 시작되는 월정사 전나무숲으로 앞서 질러간다.
♣ 오대산 가는 길, 마음이 먼저 질러간다
오대천(五臺川) 중류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月精寺)는 동대산 만
월대에 떠오르는 보름달이 유난히 밝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연스
님이 삼국유사에서 '국내의 명산 중에서도 여기가 가장 좋은 곳이요, 불법
이 길이 번창할 곳이다'라고 예언한대로 팔각구층석탑, 석조보살좌상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만산홍엽(滿山紅葉) 가을 오대산의
고운 산색 또한 월정사의 전나무숲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원 입구에서 월정사에 이르는 2km의 전나무 숲은 내소사의 전나무숲과
더불어 백미로 손꼽힌다. 천년을 그 자리에서 버티고 선 아름드리 전나무
위로 청설모가 노닐고, 왼편으로는 오대천의 맑은 물소리가 돌돌거린다.
붉디 붉은 단풍잎 사이로 낮에는 햇살이, 밤에는 달빛이 스며들어 이 길엔
언제나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그리고 초록이 지쳐 가을이 왔듯,
이제 단풍에 지친 전나무숲에서는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얗게 눈이 덮인 겨울 전나무숲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긴 곳은 월정사와 이웃한 상원사(上院寺)다. 월정사에서 서북쪽으로
8km 지점에 위치한 상원사는 현존 유물 중 가장 오래된 '동종'과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은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런 궁전'이라는 뜻이다.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이 없으니 괴로울
것이 없는 부처님의 경지를 나타낸다. 오대산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등산객이 잠시 들러 피곤한 다리를
풀고,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디 사람만 그 궁전에 들 것인가. 세월을 감지할 수 없는 고목 위에
앉아 적멸보궁을 바라보는 다람쥐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비탈길을 올라 적멸보궁을 대하고 내려오니 생각의 깊이가
달려졌음이다. 너와지붕으로 유명한 북대사를 보기 위해서는 상원사 초입에서 또다시 시작되는 비포장도로에 일단 들어서야
한다. 시간으로는 20여분, 해발 1천2백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북대사는 미륵암자이며 지금은 수행과 참선만을 하는 곳이어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북대사 앞은 평창군 진부면과 홍천군을 가르는 기점이다. 버스도 이곳에서는 방향을 되돌려 다시 월정
사로 향한다. 상원사에서부터 시작하여 북대사를 거쳐 20여km의 이 비포장도로를 일컬어 북대령이라 한다. 446번 지방도로와
연결되는 이 곳은, 오대산 자락을 따라 홍천으로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길은 오대산 국립공원을 한 눈에 조망하게 해준다.
단풍과 들꽃과 온갖 청아한 새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비슷하지만 표정이 다른 길들이 이어져 묘한 느낌을 준다. 이 길에서는
청설모나 다람쥐같은 앙증맞은 동물들을 곧잘 마주치곤 한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법이 없다. 자연을 닮은
사람만이 이 길에 들어서는 까닭일까? 북대사에서 참선하는 수도승들을 위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홍천으로
이어진 고개를 넘어서면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귓전에 와 닿는다. 명계계곡이다. 오대산 국립공원의 북쪽에 있는 청정계곡.
비로봉, 두로봉, 호령봉 등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모여 계방천을 이뤄 형성된 계곡이다.
기아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