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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일탈/가보고 싶은 곳 2009. 8. 30. 13:28
아침나절 잠시 '쨍'하던 가을 하늘의 청명함이 채 눈에 익기도 전에 세상은 온통 희뿌연 비구름에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만산홍엽의 울긋불긋한 아름다움이나 멀리 설악을 중심으로 내려 뻗은
백두대간의 장엄함은 발치까지 덮인 운무를 핑계 삼아 쉽사리 제 속살을 내보이지 않고 오히려
신비감만 증폭시킵니다.
그렇게, 가을의 낭만을 시새움하는 늦은 비에 세월은 무참하게 떨어져
내리고, 또한 한탄할 그 무엇도 남기지 않은 채 무심하게 흘러만 갑니
다. 다만 인간들이 있어 떨어져 내리는 낙엽을, 가버리는 세월을 안타
까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했습니
다.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엔" 여전히 "그 눈동자와 입술"의
흔적이 선연하게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인제가 낳은 요절 시인 박인
환의 시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곳에서 잊혀지기 쉬운 추억을 회상
합니다. 세월은 가고 또 오는 것이란 사실은 잠시 접어둔 채 속절없는
그리움에 몸부림칩니다. 그 한가운데, 애달아하는 가을의 서정 한 복판에 인제가 있었습니다.
♣ 백담사에서 만난 깊은 가을
그렇습니다. 나라 안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 중의 하나가 바로
인제입니다. 태백산맥의 줄기들은 인제 지경을 감싸고돌며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입니다.
특히 설악의 단풍은 가히 압권입니다. 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몸을 뒤채는 장관을 본 이들
은 그 자연의 오묘함에 반해 자리를 뜰 줄 모릅니다. 인제의 가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곳도 바로 설악 지경입니다. 그 중에서도 백담사에 이르는 산협 7km 오솔길은 노약자
들도 큰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단풍 관광 코스로 꼽힙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2년
1개월을 칩거했던 관계로 한층 유명해진 이 고찰은 절집 보다는 오히려 그곳에 이르는 계곡 길이
더 유명할 정도인데, 옥빛 투명한 물줄기와 색색으로 아름답게 물든 만추의 장관은 답사객들의 발
길을 한없이 부여잡습니다. 4천원이나 하는 주차료와 2천원이 넘는 입장료, 그리고 차량 출입을 철
저하게 통제하는 까닭에 물어야 하는 1,600원의 왕복 버스비가 너무 심하다 싶어 불평들을 쏟아내
지만, 버스에서 내려 풍광을 즐기며 걷는 3km 남짓의 진입로에서 사람들은 어느새 짜증스러움의
감정들을 모두 다 놓아버리고 맙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백담사는 민족 시인 한용운 선사가 머물
며 수행과 집필을 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백담사는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에 자장율사
가 창건한 한계리의 한계사가 그 효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터가 안 좋았는지, 한계사는
창건 이후 10여 차례가 넘는 화재로 소실과 복원을 거듭합니다. 그런 연유로 사찰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이름도 백담사라 개명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북면 한계리에는 옛 한계사의 터가 남아 있
어 강원도 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백담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둘러보는
장소는 보물 제1182호인 목조 아마타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는 극락보전과, 전 전 대통령 내외가 쓰
던 극락보전 앞 요사채, 그리고 만해 선사 관련 유적들입니다. 백담사에서 입산하고 득도를 했으며
말년에 부속 암자인 오세암에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펼치기도 했던 만해를 기리고자 이곳에는 만해
시비와 만해당, 만해박물관 등이 조성되어 있기도 합니다.
♣ 설악을 끼고 자리한 수많은 절경들
인제에서 양양 방면으로 넘어가는 한계령 줄기에도 수많은 절경과 유적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한계령 초입인 북면 용대1리에는 십이선녀탕이 선경을 자랑하며 흐르고 있습니다. 맑고 푸른
물이 84m의 계곡을 흐르며 천변만화하는 풍경은 "신이 고심해서 빚어놓은 역작"으로까지 평가
받습니다. 그런가 하면 북면 한계3리에 위치한 장수대와 그 주변의 가리봉, 옥녀탕, 대승폭포,
소승폭포, 한계산성 등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들입니다. 88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의 장관
이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대승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로 불리는 곳입니다. 인제읍 합강2리에 위치한 합강정은 소양강의 상류인 내린천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한 정자입니다. 숙종 2년(1616)에 인제 현감 이세억이 세웠다고 전해
지는 이 정자는 원래 조금 아래에 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합강정 옆에는
인제 출신의 시인 박인환의 시비가 서 있는데, 아직도 그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을 기억하는 이들은 인제를 지나는 길에 이 현대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시비에 들러 시인의 요
절을 안타까워 하기도 합니다. 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내린천입니다. 최근에 와서 래프팅의
명소로 더욱 유명해진 이 하천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입니다. 31번 국도
를 따라 70여 km에 이르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형성하는 이 하천은 곳곳에 넓은 백사장과
합강, 피아시, 장수터, 궁동, 솔밭 등의 여러 유원지를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기아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