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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자의 길
    쉼 터/잠깐 쉬며.. 2009. 6. 24. 11:32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이 대중 정치인으로 우뚝 선 계기는 1970년 9월 29일 열린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 신민당 임시전당대회였다.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이철승과 함께 출마한 이 대회에서 1차 투표

    는 김영삼421표, 김대중382표였으나 과반수 미달로 치른 2차 투표에서 김대중이 458표를 얻어 후보

     

    자로 지명된다. 2차 투표를 치르기 전 이철승에게 “소석(이철승의 호)형 도와주시오”라는 김대중의

    쪽지가 전달됐고 이로써 표의 흐름이 바뀐 것이다. 김영삼으로선 다 잡은 대권후보를 눈앞에서 놓

    셈이다. 전당대회장을 메웠던 대의원들에겐 신민당의 뿌리격인 민주당이 신파 구파로 집안싸움만

     

    하다가 5‧16 쿠데타를 맞은 악몽도 떠올랐다. 김영삼은 윤보선, 유진산으로 이어지는 구파의 황태자,

    김대중의 정치적 아버지는 신파의 영수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김영삼은 승복했다. 그러나 권위주의

    시대를 지내온 우리 정치사에서 경선 승복은 드물다. 1992년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은 김영삼의

     

    대세론에 이종찬이 불공정 시비를 걸다가 경선거부로 이어졌다. 1997년 신한국당의 경선에 불복,

    탈당해 출마한 이인제는 그로 인해 ‘경선 패자는 탈당해 출마할 수 없다‘는 ’이인제 방지법‘까지 만들

    어졌지만 5년 후 다시 민주당 경선에 불복 탈당한다. 정몽준도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에 노무현과

     

    합의하고도 대선 직전 철회했다. 2년 전 이명박과 박근혜가 맞붙은 한나라당 경선은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운 경선 드라마로 꼽힌다. 그러나 그 이후 끝없이 새나오는 친이, 친박간의 알력과 갈등은 그

    때의 감동을 무색케 할 정도다. 급기야 “박근혜 씨가 패자의 길로 가야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한나라당 전 대표의 입에서 나왔다. 그뜻이야 무엇이든 양쪽의 협량(狹量)과 오기는 가히 가관이다.

    그네들의 승부야 어찌되던 국민이 패자의 길로 내몰릴까 두렵다.

                                                                                           국제신문 도청도설 권순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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