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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사과쉼 터/잠깐 쉬며.. 2009. 6. 24. 22:06
새천년으로 접어든 지난 2000년 3월 교황청은 ‘회상과 화해:교회의 과거 범죄’란 역사적인 문건을
발표했다. 십자군전쟁 당시 무슬림 학살, 중세의 마녀사녕과 종교재판을 통한 탄압, 신대륙 원주민
과 유대인 학살에 대한 침묵과 반조 등을 고백하는 내용, 교황 요한바오로2세는 회개를 뜻하는 보랏
빛 제의를 입고 미사를 집전하며 용서를 청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카이로대 연설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53년 이란 정부 전복에 가담한 미국의 책임을 인정하며 솔직하게 화해의 손짓을
내민 그의 연설은 이슬람사회의 대미 적개심을 녹이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 우리나라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제주 4‧3사건과 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한 국가의 과오를 사과했다. 19세기
영국 정치가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사과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하는 것”이라 했지만 사과하는
지도자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다. 심리학자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마스의 ‘사과의 다섯 가
지 언어들’이란 책이 말하는 진정한 사과의 조건. “하지만 ‧ ‧ ‧"이라고 토달지 말 것, 뭐가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말할 것, 책임을 명확히 인정할 것,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밝힐 것, 재발 방지를 약속할
것. 미국 상원이 최근 노예제와 짐 크로법에 대한 사과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상원은 “노예
제와 짐 크로법의 부당성, 잔학함, 야만성을 인정하며 고통 받은 흑인과 그들의 선조에 사과 드린다“
고 밝혔다. 짐 크로는 흑인 유랑 악단 코메디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을 따온 법. 이 법으로 1964년
민권법이 제정될 때까지 흑인은 기차 칸과 극장, 여관, 식당, 화장실 등을 백인과 함께 쓸 수 없었다.
흑인은 해변과 공원에도 갈 수 없었다. 오바마 당선에 환호했던 흑인들은 이번 결의안 통과에 감회
가 남 달랐을 터.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유감을 표명하고 국정 쇄신을 다짐하는 담화문을 발표하라
는 이회창 선진당 총재의 권고에 이명박 대통령이 화답했다. 민심 수습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지난해 두 차례나 대국민사과를 하고도 여전히 소통 부재란 소리를 듣는 이 대통령이다. 담
화문 쓸 때 ‘사과의 다섯 가지 언어’를 참고하면 어떨까.
국제신문 도청도설 강동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