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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육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4. 15:31

    자내 집의 술 익거든 부듸 날을 부르시소

    草堂에 곳 피거든 나도 자내를 請하옴쇠

    百年덧 시름업슬 일을 議論커져 하노라

                        ~김육(金堉;1580~1658)~

    <해설>

    자네 집에 담근 술이 익거든 부디 나를 불러 함께 마시도록 하사이다.

    나도 또한 우리 집 초당에 꽃이 피면 자네를 부르리다. 그리고 백년

    동안 조심 없이 살아갈 의논이나 합시다, 구료.


    ◈ 배경

    김육은 본관이 청풍인데 자를 백후(伯厚)라 하며 호는 잠곡(潛谷)이다. 그는 실학파

    (實學派)의 선구자로 금오랑(金吾郞), 음성현감을 거쳐 효종 2년에는 영의정에 올랐

    다. 사신으로 여러 번 북경에 다녀왔는데 이때 식견을 많이 높혔다.  즉 엽전을 찍

     

    어서 통화로 쓸 것을 논의했으며 충청관찰사로 있을 때에는 상주하여 대동법(大同

    法)을 실시하고 수군제(水軍制), 서양력(西洋曆)의 합리성을 논하여 효종 4년 시헌

    력(時憲曆)을 채용케 하는 등 근대문명의 선각자였다. 저서로 해동명신록(海東名臣

     

    錄) 등이 있다. 잠곡 보다 조금 늦은 실학파의 대학자로는 서계(西溪) 박세당(朴世

    堂;1629~1703)이다. 본관이 반남이고 자는 계긍(季肯)인데 현종 원년 문과에 급제

    하여 벼슬이 이조와 형조의 판서를 지냈다. 서계는 경사 백가는 물론이고 노장의

     

    학과 불교까지 널리 탐독했는데 백호(白湖) 윤전(尹臇)과 더불어 대담하게도 주자

    (朱子)의 학설을 비판하여 당시의 유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때 유학을 모독

    하는 자라 하여 귀양까지 갔으나 굴치 않고 노자와 장자의 책까지 주석을 달았다.

     

    백호 윤전(1671~1680)은 본관이 남원이고 자는 희중(希仲)인데 오직 학문에만 정

    진한 학자였다. 그는 새로운 이기설(理氣設)을 주장하여 이퇴계와 이율곡의 학설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백호는 남인으로서 당시의 주자학 대학자인 서인 ‘노론’인 우암

    송시열과 늘 의견이 대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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