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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익한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2. 19:50

    首陽山 나린 물이 夷齊에 怨聲되야

    晝夜 不息하고 여흘여흘 우는 뜻즌

    至今에 爲國忠誠을 못늬 슬허하노라

                      ~홍익한(洪翼漢;1580~1637)~

    <해설>

    저 백이와 숙제의 두 형제가 옛 임금을 사모하고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숨어 살은 수양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물이 아니라 이제의

    원한어린 눈물이다. 그들의 눈물이 밤낮을 쉬지 않고 여흘여흘 울며

    흘러내리는 까닭은 지금의 나라를 위한 충성이 옛날만 못하다 하는

    것을 자못 아쉬워하는 소리렸다.


    ◈ 배경

    홍익한은 본관이 남양(南陽)이고 자는 백승(伯升)인데 호는 화포(花圃)이다.

    어려서 월사 이정귀에게 글을 배웠고 광해군 9년 생원과에 들었으며 인조 2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장령(掌令)에 이르렀다. 병자호란에 청나라와의 굴욕적인

     

    화의를 배척하는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청나라에 잡혀가 그곳에서 순절(殉節)

    하였다. 오달제(吳達濟), 윤집(尹集)과 더불어 ‘병자 삼학사’의 한 사람이라 불린다.

    중국대륙은 임진왜란 때 국력을 거의 소모한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일어나고

     

    있었다. 인조 5녀 청나라 군사가 황해도 평산(平山)까지 쳐들어왔는데 우리나라에선

    그들과 강화(講和)한 다음 형제 국이 될 것을 약속했다. 이것을 정묘호란(丁卯胡亂)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강화조약은 맺었으나 명나라가 아직 그 여명(餘命)을 간직하

     

    고 있었으며 조정에서는 명나라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말하자면 이태조 이래

    명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리지 못하고 바닷길로 명나라와 내왕을 하고 있었던 것이

    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한산성을 수축하고 성안에 절 아홉 개를 세우고서 중들로

     

    하여금 활쏘기를 장려하여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였다. 또한 강화는 옛날부터 외적

    을 막아주던 중요한 곳이므로 이곳의 성과 문을 고쳤으며 곡식을 저장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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