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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안눌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2. 19:47

    天地로 帳幕 삼고 日月로 燈燭삼아

    北海를 휘여다가 酒罇에 다혀 두고

    南極에 老人星 대하여 늙을 뉘를 모롤이라

                         ~이안눌(李安訥;1571~1637)~

    <해설>

    하늘과 땅을 장막 삼고, 해와 달로 등불을 삼으면서 북녘의

    바다를 끌어다가 술통에 담아두고서, 남극의 노인별을 대하고

    있노라면 늙을 때를 모르리라.


    ◈ 배경

    이안눌은 곤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자민(子敏)이며 호는 동악(東岳)이다. 선조

    32년 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고 충청관찰사, 강화부윤을 역임했다. 인조반정 후

    예조와 호조와 형조참판을 지냈는데 병자호란 때세는 인조대왕을 모시고 남한산성

     

    에 들어갔다. 그러나 병으로 환도하자 향년 67세로 일생을 마치었다. 특히 한시에

    조예가 깊었으며 저서로 동악집을 남겼다. 인조반정이 성공하자 공신에 대한 논공

    행상이 있었다. 이때 이괄은 이귀(李貴), 김류(金瑬), 김자점(金自點) 등과 큰 공을

     

    세워 마땅히 훈일등(勳一等)이 되어야 했는데 훈이등에 머무르고 그 아들들은 논공

    에도 끼이지 못했다. 그래서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인조 2녀 서도에 병란이 있자

    장만(張晩) 도원수 아래 이괄은 부원수에 평안병사를 겸하고 영변에 있게 되었다.

     

    그는 구성부사(龜城府使) 한명련(韓明璉) 등과 모반하여 질풍처럼 군을 진격 서울에

    입성했으며 인조대왕은 한강을 건너 공주로 피난했다. 이것이 ‘이괄의 난’이다. 그러

    나 이괄은 뒤쫓아 온 도원수 장만의 군과 정충신의 부대 공격을 받아 서대문밖 길마

    재에서 싸웠고 패배하여 이천 묵방리에서 부하 손에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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