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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찬한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1. 19:34

    貧賤을 팔랴 하고 權門에 드러가니

    침업슨 흥정을 뉘 몬져 하쟈 하리

    江山과 風月을 달라 하니 그는 그리 못하리

                             ~조찬한(趙纘韓;1572~1622)~

    <해설>

    가난하고 천하게 사는 것이 지긋지긋하여 그것을 팔고자 권세 있는

    집을 찾아가는데, 댓가가 없는 흥정을 누가 좋다고 하며 먼저 하자고

    하겠는가 만은 강산과 풍월을 달라고 한다.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될

    노릇이다. 


    ◈ 배경

    조찬한은 본관이 한양으로 자는 선술(善述)이고 호는 현주(玄州)이다. 선조 때

    등과하여 상주(尙州) 목사까지 이르렀는데 인조반정 후에는 형조, 예조참의를

    지냈으며 만년에서 선산부사(善山府使)를 지냈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석주(石洲),

     

    권필(權鞸),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 소암(疎庵) 임숙영(任叔英)과 절친하였다.

    형님인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 역시 벼슬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까지 이르

    렀는데 문장이 씩씩하고 웅대한 바 있었다. 석주 권필이 “내 시가(詩家)의 궤도(軌

     

    道)에 있어 그 근기(根基)의 회척(恢拓;넓고 크다는 것), 기염(氣焰)의 성대(盛大)는

    조아무개를 따르지 못한다.“고 할 정도였다. 정인홍과 이이첨 등은 장렬 벼슬로 있

    는 윤양(尹讓) 등을 시켜 “돌아가신 대왕이 편치 않으실 때 이름 있는 장수와 손을

     

    잡고 무사를 불러 모았으며 낮과 밤으로 일을 꾀했음은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아는

    바입니다.“하고 임해군을 모함하는 연명 상소를 올리게 했다. 상소를 받아본 광해군

    은 깜짝 놀랐다. 자기 형님인 임해군을 역적음모를 꾀했다는 상소이므로, 원로 대신

     

    들에게 상의를 하였다. 아계 이산해, 오리 이원익, 한음 이덕형, 백사 이항복, 일송

    (一松) 심희수(沈喜壽), 부훤당(負暄堂) 허욱(許頊), 백졸재(百拙齋) 한응인(韓應寅)

    같은 사람들이 자문을 받았다. 백졸재 한응인(1554~1614)은 청주 한씨로서 자는

     

    춘경(春卿)이다.선조 10년 문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는 한음 이덕형과 더불어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접반사(接伴使)를 지내며 외교활동을 하였다. 그 뒤 이조판서

    를 거쳐 우의정까지 올랐던 사람이다. 또 부훤당 허욱(1547~1615)은 본관이 양천

     

    (陽川)인데 자는 공신(公愼)이다. 성격이 침착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으로 공주목사

    와 호서관찰사를 지내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량미 조달에 큰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나자 국내에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는데 부훤당은 왕명을

     

    받아 명나라에 건너가 좁쌀 2만 2천 7백 섬을 얻어와 긴급 구호에 나선 일도 있었다.

    그리고 호조와 판서를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을 차례로 지낸 사람이다. 일송 심희

    수(1548~1622)는 본관이 청송으로서 자는 백구(伯懼)이다.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임금을 호종(扈從)하여 도승지로 있었고 난후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사람이다.

    이 일곱 사람의 대신들은 서로 상의하고 상소가 비록 사실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임금님이 형님을 죽일 수 있겠는가? 이런 결론을 모으고 대표로서 이덕형이 광해군

     

    에게 아뢰었다. “절해고도에 귀양 보내어 일생을 마치도록 하심이 성상의 덕이기도

    하옵니다.“ 그러나 이이첨과 정인홍은 다시 상소를 올렸다. 이미 임해군의 무리를

    잡아 문초한 결과 죄가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임해군은 즉시 죽어야 마땅하

     

    다는 주장이었다. 이때 백사와 한음은 결사적으로 임해군을 변호하였고 이 때문에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강화 교동섬에 압송돼 있었던 임해

    군은 이미 교동현감 이직(李稷)이 죽여 버린 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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