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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만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3. 26. 22:53

    風波에 놀란 沙工 배 파라 말을 사니

    九折羊腸이 물도곤 어려왜라

    이 後란 배도 말도 말고 밧갈기만 하리라

                           ~장만(張晩;1566~1629)~

    <해설>

    바람 불고 파도치는 물에 하도 혼이 난 뱃사공이 배를 팔아 말을

    사들였다. 그런데 그 말을 끌고 다녀야 할 산길은 험하고 꼬불꼬불

    하여 물길보다도 더 살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이 뒤로는 배도 말도

    집어치고 농사일에만 전념하였다.

     

    ※ 당파싸움이 심한 조정에서 문관이든 무관이든 해먹기가 힘들므로

        차라리 전원에 돌아가 살겠다는 뜻이다.


    ◈ 배경

    장만은 인동 장씨로서 자는 호길(好吉)이고 호는 낙서(洛西)이다. 선조 24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속했는데, 예조좌랑, 정언, 지평을 거쳐 봉산(鳳山)군수로 나갔다.

    이어 암행어사로 호서지방을 다녀왔고 도승지, 대사간을 거쳐 명나라에 사신으

     

    갔었다.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팔도 도원수가 되었으며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이것을 평정했다. 낙서는 문무겸비한 사람으로 64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조정에선 영

    의정을 추증하였다. 송응형과 그의 형 응개는 이발의 파가 되었는데 동암 이발이

     

    서울 북쪽에 있는 백악산(白岳山) 밑에 살았으므로 사람들이 북인(北人)이라 불렀다.

    동인에서 북인이 생긴 것이다. 이때 추연(秋淵) 우성전(禹性傳)이란 분이 있었다.

    우성전(1542~1593)은 본관이 단양으로서 자는 경선(景善)이었고 퇴계 이황에게서

     

    글을 배웠다. 일찍이 명종 16년 진사에 올랐고 선조 2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봉교, 홍문관 수찬을 거쳐 수원현감(水原縣監)으로 나갔다. 장가는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딸에게 들었다. 선조 9년 추연은 수원현감으로 부임했는데 송사가 수천

     

    건이나 쌓여 처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연은 그 많은 고소장을 대충 훑어보더니 한

    묶음으로 묶으라 하고 아전을 시켜 불태워 버리라고 명했다. 송사는 개인이 이해관계

    가 복잡하게 얽힌 것으로서 그 서류를 불태워 버렸으니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

     

    었다. 그러자 추연은 종이를 가져오게 하고 사건의 종류와 송사한 사람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는데 하나도 틀림이 없어 모두 귀신과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율곡은 이 추연의

    재주를 전해 듣고 그를 몹시 아꼈다. 그러자 젊은 선비들이 추연을 시기한 것이다.

     

    추연은 또한 얼굴이 미남자라 장안의 기생들이 모두 따랐다. 그러다가 추연이 상(喪)

    을 입게 되었는데 기생들이 소복을 하고 앞을 다투다시피 찾아와서 문상을 드리는 것

    이었다. 양반집에 그것도 벼슬하는 선비의 집에 천한 직업으로 여겨지는 기생들이 몰

     

    려와 문상을 했으므로 이것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동암 이발도 추연의 집에 조상

    을 갔다가 기생이 머리 풀고 통곡하는 것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이래서 이발은

    우성전을 외입질이나 하는 건달로 알게 되었고 비난 했으므로 서로 사이가 나빠져

    반대하는 입장이 되었다. 즉 우성전은 북인에 대항하는 남인(南人)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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