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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자신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3. 25. 08:46

    秋山이 夕陽을 띄고 江心의 잠겼는듸

    一竿竹 빗기 들고 少艇의 안자시니

    天公이 한가히 너겨 달을조차 보내도다

                           ~유자신(柳自新;1533~1622)~

    <해설>

    가을의 산이 저녁놀로 물든 강물에 잠기었는데, 낚시대를 드리우고

    조그마한 배에 앉아 있으려니까 하느님이 너무 한가하다고 여기셨던

    모양으로 달마저 보내주셔 벗을 삼게 해주는구나.


    ◈ 배경

    유자신은 광해군의 국구로서 형조참판을 지냈다. 그 아들 유희분(柳希奮)은 많은

    왕자를 죽이매 인조반정의 원인이 되었다. 왜군이 전라도를 침범하자 김제 군수

    정담(鄭湛)과 해남 현감 변응정(邊應井)이 이들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때 왜군이

     

    전주 지계(地界)를 침범했는데 앞서의 두 사람이 산에 목책을 치고 그들을 막았고

    중과부적으로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왜군이 전주를 넘겨 모려 했는데

    전라감사 이광이 성 밖에 의병(疑兵)을 두어 적을 현혹케 했다. 적은 곰고개에서

     

    정담 등과 싸울 때 정예를 많이 잃었기 때문에 감히 전주성을 공격하지 못했다.

    8월 1일 순찰사 이원익과 순변사 이빈, 별장 김응서(金應瑞) 등이 평양을 공격했

    으나 실패하고 다시 순안(順安)으로 물러섰다. 적도 평양에서 더 나오지 못했다.

     

    강원도 조방장인 원호(元豪;1533~1592)가 구미포에서 적을 공격하여 섬멸시키고

    다시 춘천에서 적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원호는 자가 중영(中英)인데 명종 20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경원부사를 지냈다. 그는 춘천에서 싸울 때 화살이

     

    떨어지고 칼이 부러지는 등 역전분투 하였으며 마침내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 무렵 권응주(權應誅)와 정대임(鄭大任)이 의병을 일으켜 마침내 영천(永川)을 

    탈환했다. 이때 아군은 화공을 하여 다수의 적을 몰살시켰으며 적의 패잔병은 경주

     

    쪽 으로 달아났다. 또 좌병사 박진이 이각의 후임으로 병사가 되었는데 흩어졌던 

    백성들이 다시 모이고 군사들도 모였다. 박진은 군사 1만 여명을 거느리고 경주성을 

    공격했다. 그러자 왜군이 반격해 나왔는데 아군은 일단 안강(安康)까지 후퇴한 뒤 

     

    밤중에 다시 잠입하여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발사했다. 진천뢰는 그야말로 

    벼락 날아오듯 적진 속에 떨어져 그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일종의 대포로 

    한껴번에 왜군 30여 명이 맞아 몰살하는 등 위력이 대단했다. 왜군은 경주에서도 

     

    달아나고 서생포(西生浦)로 도망쳤다. 비격진천뢰는 군기사 소속의 이장손

    (李長孫)이 고안한 것이다. 왜군은 이 무기를 가장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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