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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제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3. 23. 19:44

    靑草 우거딘 골에 자는다 누엇는다

    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만 무텄는다

    盞 잡아 권할 리 업스니 그를 슬허 하노라.

                         ~임제(林悌;1549~1587)

    <해설>

    푸른 풀이 우거진 곳에서 잠자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누워 있는가?

    젊고 아름답던 그 얼굴은 어디로 떠나보내 백골만이 앙상하게 묻혀

    있단 말인가. 이제는 잔에 술따라 권해줄 사람도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구나.


    ◈ 배경

    임제는 자는 자순(子順)이고 호는 백호(白湖)인데 시인이다. 그는 일찍 속리산에

    들어가 대곡(大谷) 성운(成運)에게 사사(師事)하고 선조 9년 생원, 진사에 올랐으며

    이어 다음해 문과에 급제 벼슬이 예조정량겸 지제교(知製敎)였었다. 소설도 썼으며

     

    화사(花史),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이 그것이다. 이 시조는 평안 도사(都事)로 부임

    할 때 황진이의 무덤 옆을 지나다가 몸소 제문을 짓고 그 무덤에 술을 따라 주었다

    고 한다. 이일(李鎰)이 출발하고 나자 신립(申砬)이 말했다. “이일이 고군(孤軍)으로

     

    전방에 나가 있는데 그를 지원할 후속부대가 없습니다.“ 이 말에 신립도 나가 싸울

    뜻이 있음을 알고서 선조는 도순번사로 그를 임명하고 전선에 출발시켰다. 그러나

    그에게도 별로 군사가 없었다. 이보다 앞서 선조는 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병사로

     

    있던 김성일을 즉시 잡아 옥에 가두라고 명했는데 서울로 압송되어 오자 다시 그

    죄를 용서하고 초유사(招鍮使)로 임명했다. 성일은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죽을 결심

    을 하였다. 함안군수인 유숭인(柳崇仁)이 적병을 무찔렀으므로 병사로 발탁했다.

     

    패전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왜군이 상주를 함락시켰다. 그러자 영주

    풍기에서느 의병이 일어났다. 상주가 함락되기 전 이일은 상주에서 모은 군민까지

    합하여 겨우 8~9백명 밖에 안되는 이들을 상주 북쪽 냇가에서 훈련시켰다. 드디어

     

    왜군이 몰려왔다. 왜군은 잘 훈련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조총(鳥銃=화승총)을 갖고

    있었다. 이 신무기에 아군은 가뜩이나 시달림을 당해야만 했다. 아군은 화살로 응전

    했으나 적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다. 형세가 다급하자 이일은 부득이 퇴각을 하였다.

     

    상주를 내준 것이다. 문경까지 물러나 패전의 장계를 올리고 새재를 지키려고 했으

    나 신립이 충주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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