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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의 시한 자/한시(한국) 2009. 3. 21. 10:24
내 언제 信이 업서 님을 언제 소겻관듸
月沈 三更 에 온 뜻이 전혀 업늬
秋風의 디는 님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해설>
내가 언제 한 번이라도 신용이 없게시리 임을 속인 일이 있기에
깊어진 달밤 한 밤중에 온 표적이 전혀 없구나, 가을바람에 떨어
지는 나뭇잎 소리에도 내가 아니 속고 어이 하리오.
동짓달 기나긴 바믈 한 허리 둘헤 내여
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혔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黃眞伊; ?~1530)
<해설>
동짓달 긴긴 밤의 반을 뚝 베어내어 봄바람마냥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뭉치어 넣어 두었다가 정든 임이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펼쳐내어 그 밤이 더디 세게 길게길게 이으리라.
◈ 배경
황진이는 송도의 명기로서 자를 명월(明月)이라 한다. 이름은 전하지 않으나 양반인
황진사의 딸로서 재색이 겸비할 뿐 아니라 뛰어난 시심(詩心)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미모로도 제일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소리와 시로서 따를 자가 없었다. 그는 기생이
된 뒤 중국의 명창ㅇ 율객이나 문인학자와도 사귀어 명산대천을 두루 돌아다니며
시가와 풍류로서 일생을 보낼 때 당시의 명공거경(名公巨卿)과 학자고승을 모조리
사랑의 향망(香網)으로 사로잡은 명기였었다. 만석의 공양미를 받은 지족노선(知
足老禪)도 그녀의 유혹에 무릎을 꿇었지만, 서하담(徐花潭=토정의 스승)만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 감탄하였다. 스스로 송도삼절(松都三絶)의 하나라 하였다. 또 의지가
굳은 벽계수(碧溪守)라는 사람과 만나 읊은 시조가 또한 유명하다. 그녀의 작품으로
시조 5수와 한시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