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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사성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3. 16. 11:21

    江湖에 겨월이 드니 눈 기피 자히 남다

    삿갓 빗기 쓰고 누역으로 오슬 삼아

    이 몸이 칩디 아니 해옴도 亦君恩이삿다.


    <해설>

    강호에 겨울이 닥치니 눈이 한 자나 넘게 깊이 쌓인다.

    삿갓을 머리에 비스듬히 쓰고 도롱이를 둘러 이 몸이 이렇게라도

    춥지않게 지낼 수 있음도 또한 임금의 은혜인 것이다.


    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興이 절로 난다

    濁醪溪邊에 銀鱗魚 안주로다

    이 몸이 閒暇해옴도 亦君恩이삿다.

                                 ~맹사성(孟思誠;1360~1431)~

    <해설>

    강호에 봄이 찾아오니 미칠듯이 일어나는 흥을 참을 수 없다.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대자연의 고마움이 새삼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울가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노는데 안주로는

    은비늘도 반짝거리는 신선한 물고기가 있다 이와 같은 몸의 안락,

    평안 또한 임금님의 은혜가 아니고 또 무엇이랴.


    ◈ 배경

    제 3대 태종은 철저한 배불숭유정책(排佛崇儒政策)의 강행, 관제의 개혁, 저폐(楮幣)

    의 발행, 신문고(申聞薣)의 설치, 호패법(號牌法)을 제정하여 호구 수를 파악했다.

    주자소를 설치하여 금속활자를 만들고 여러 가지 책을 찍어냈다. 태종을 추대한

     

    하륜(1347~1416)은 본관이 진주(晋州)로서 자는 대림(大臨)이고 호는 호정(浩亭)

    이다. 학문을 좋아하여 책을 항상 손에서 놓지를 않았다고 한다. 우왕 14년 최영이

    요동 정벌을 하려 하자 이를 반대 하였고 이씨조선이 되자 태조 밑에서 경기관찰사

     

    등을 역임, 정종이 즉위하자 우의정이었는데 태종을 옹립하고서 좌의정, 영의정이

    되었다. 이 하륜 영의정 아래 우의정을 지낸 이가 박은(1367~1422)으로 본관은 반남

    (潘南)인데 자는 앙지(仰之)였고 호는 조은(釣隱)이었다. 태종과는 방원 일 당시부터

     

    친했는데 대사헌으로 있을 때 명나라의 사신 황엄(黃儼)이란 자가 제주의 동불(銅佛)

    을 구경하고 이것을 요구했다. 박은이 예로서 대답하며 그 불가함을 설득하자 황엄도

    감동하고 그 요구를 철회했다고 한다. 또 변계량(卞季良;1369~1430)은 밀양 사람

     

    으로 자를 거경(巨卿)이라 했고, 호는 춘정(春亭)이다. 그는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17세에 등과하여 전교, 주부를 역임, 태종 때에는 예조참의를 거쳐 대제학

    에 올랐다. 명나라의 문서는 그의 손을 거쳐서 수정되었다. 또 권근(權近;1352~1409)

     

    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자는 사숙(思叔)이었고 호는 양촌(陽村)이다. 고려 공민왕

    18년 문과에 급제하여 첨사밀직사사(僉事密直司事)에 이르렀고 이씨 왕조가 서자 한

    때 숨었다. 그러나 이성계의 부름을 받아 다시 나갔고 찬성사, 대제학에 올랐고 길창

     

    군(吉昌君)에 봉해졌다. 태종이 즉위하자 정몽주의 충정을 표창할 것을 상소하였는

    데 왕도 이를 받아들였다. 태종은 양녕(讓寧), 효녕(孝寧), 충녕(忠寧)의 세 왕자가

    있었다. 양녕은 자를 후백(厚伯)이라 하고 이름은 시(禔)였는데 1394년에 태어났다.

     

    태종 4년 세자로 책봉되고 명나라까지 다녀오기도했다. 효녕은 자를 선숙(善叔)이라

    하고 이름은 보(補)였는데 1396년에 태어났다. 효녕은 어려서부터 총명했는데 성장

    하자 독서를 즐겼고 활 솜씨도 뛰어났다. 태종을 따라 평강(平康)에서 사냥을 할 때

     

    화살 다섯을 날려 모두 맞추었다고 한다. 총녕은 자를 원정(元正)이라 하고 이름은

    도(祹)인데 1397년에 태어났으며 이분이 바로 제 4대 세종대왕이다. 충녕대군이

    12세 때 태조 이성계가 세상을 떠났다(태종8년). 태종은 충녕이 태어나자 막내아들

     

    에 대하여 각별한 사랑을 쏟았고 장차 왕위를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러자면 또 한 번 쓰디쓴 기억이 떠 오른다. 왕자의난을 일으키면서까지 왕위에 올랐

    던 만큼 세자 양녕대군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더구나 양녕은 할아버지 태조를 닮아

     

    호걸스럽고 용맹했던 것이다. 그런데 양녕은 이미 부왕의 진의(眞意)를 눈치챘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양녕의 양광(佯狂)이 시작되어 대궐 담을 뛰어넘어 무단 외출한다

    던가 부녀자를 회롱한다던가 하였다. 마침내 태종 18년(1417) 영의정 유연현이  문무

     

    백관을 이끌고 어전에 나아가 세자의 실덕(失德)을 낱낱이 들어 폐할 것을 상주했다.

    태종은 처음에 불응했으나 결국 이를 쫓아 충녕대군 도를 세자로 책봉하고 양녕을

    광주(廣州)로 추방했다. 이때 효녕이 양녕이 실덕하자 독서를 더욱 열심히 하였는데

     

    양광을 꾸민 양녕이 그 책을 걷어차며 “네가 그러하면 충녕은 어찌할꼬?” 했다는

    말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효녕도 그때서야 형님 양녕이 거짓으로 미친 짓을 한다는

    걸 깨닫고 즉시 머리를 깍고서 출가하였다고 한다. 양녕은 그 뒤 산수지간을 방랑

     

    하며 사냥을 즐겼고 색향(色鄕)인 평양에서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오래 살았기

    때문에 세조와 단종의 골육상쟁의 비극을 보기도 했거니 어쩌면 자기가 끝내 세자의

    지위에 연연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착잡한 감정도 느꼈으리라. 화재가 난 서울

     

    남대문의 현판 ‘崇禮門‘의 석자는 그의 필적이라 하는데 일설에는 죽당(竹堂) 유진

    (柳辰仝)의 글씨라 하고 또 암헌(巖軒) 신장(申檣)의 글씨라고도 하여 확실치가 않다.

    한편 효녕대군은 나중에 환속했는데 향년 91세고 성종(成宗) 때인 1486년에 세상을

     

    떠났다. 원래부터 호불(好佛)하여 사람들을 모아 불경을 강의했고, 그가 아직 절에

    을 때 형님 양녕이 여자들을 데리고서 절에 들어와 난잡한 짓을 하자, “형님 이게

    무슨 불손한 짓입니까, 지옥에 가시지 않으려면 삼가 하십시오.”라고 나무라자 양녕

     

    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살아서는 왕의 형이요, 죽어서는 보살의

    형이 될 텐데 내가 어찌 지옥에 가겠는가.“ 그리고 효녕은 세조가 원각사(圓覺寺)를

    세울 때 그 사업의 감독과 자문에 응했다. 이렇게 볼 때 양녕은 그 호탕한 성격으로

     

    풍류의 즐거움을 마음껏 맛보았고 효녕 역시 마지못해 중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따라서 충녕은 역시 왕기(王器)가 있어 지존(至尊)인 자리에 나아갔던 것이다.

    맹사성은 세종 때의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본관이 신창(新昌)으로

     

    자는 성지(誠之)였고 호는 동포(東浦) 또는 고불(古佛)이라 하였다. 일찍이 양촌에

    권근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고려 우왕 때 문과에 장원했으며 이조에 들어오자 태조,

    정종, 태종, 세종을 모셨던 것이다. 맹사성은 온양(溫陽) 태생인데 성격이 청렴하고

     

    장중하여 평생에 치산(治産)을 할 줄 몰랐다. 정승까지 지냈으나 그의 집은 초가삼간

    비가 샐 정도였고 외출할 때에는 하인을 둘 수도 없는 가난이라 소를 타고 다녔다.

    벼슬에서 물러나자 여전히 소를 타고 피리를 불고 다녔는데, 珍靑에 이와 같이 적혀

     

    있다. ‘至孝淸簡 性解音律 嘗執一笛 日弄三四聲(음율을 이해하였고 늘 피리를 휴대했

    는데 하루에 서너 곡 불었던 걸 알 수 있다.‘ 세종 13년에 세상을 떠나자 문정(文貞)

    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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