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경주역 근처의 유물들
    일탈/여행사진 2016. 7. 22. 16:43

    대릉원

    2016년 7월 21일 아침 9시25분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동대구행 1778호 열차를 타고 경주여행에 나섰다. 2시간여 걸려 경주역에

    도착하여 역 앞 관광안내소에서 관광지도 한 장을 받아 경주에서 유명하다는 소머리국밥으로 중식은 해결 하고 대릉원으로 향했다.

    앞서 나온 '노서리고분군'과 노동리고분군을 먼저 둘러 보았다. 규모가 방대하다 그 방대한 규모의 무덤 중에는 가짜도 있다고 한다. 

     

    대릉원으로 갔다. 먼저 안내표지 앞으로, 대릉원은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초기의 무덤들로 일부는 대릉원 구역

    안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일련번호 90~114, 151~155호인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30여 기의 무덤이 있는데 얼마나 많은

    우리의 유물들을 도굴해서 일본으로 가져 갔겠나 생각하니 참으로 답답하다, 그 중 큰 무덤은 돌무지 덧널무덤이고, 그곳의 주변에는 

     

    봉분이 없어진 작은 무덤도 있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傳 味鄒王陵)을 비롯하여 천마총(天馬塚)과 황남대총(皇南大塚) 등이

    있다. 1973년~1975년 동안 발굴조사된 황남대총은 남북길이 120m, 동서길이80m, 높이23m의 거대한 쌍무덤으로 쪽무덤에서는

    금동관과 남자의 뼈 일부 및 많은 유물이 나왔다. 북쪽 무덤에서도 금관과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씨가 있는 과대(銙帶)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단다. 남쪽 무덤의 주인은 남자, 북쪽 무덤의 주인은 여자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 만든 쌍무덤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천마총

    천마총은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 5세기 말 ~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릉원 후문으로

    들어가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나타나는 천마총은 밑둘레157m, 높이12.7m로 비교적으로 큰 무덤이며 왕 또는 왕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사람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무덤은 평지위에 나무널(木棺)과 껴묻거리(副葬品) 상자를 놓고, 그 바깥에 나무로

     

    덧널을 설치하여 돌덩이를 싸호 점토로 꼼꼼히 채운 후 봉분을 높게 쌓아 축조하였다. 천마총 발굴조사는 황남대총 발굴에 앞서

    발굴경험과 지식을 쌓기 위해 계획된 것으로 1973년 4월부터 12월까지 약 8개월 동안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유물

    11,500여 점이 출토 되었으며 광복 이후 처음으로 신라의 금관이 출토되었다. 특히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 그림 천마도

     

    (天馬圖)가 그려진 마다래가 나와서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현재 무덤의 내부구조를 볼 수 있도록 복원하였으며, 출토된

    주요 유물들은 모두복제품으로 만들어서 전시하고 있다. 대릉원 곳곳에 붉게 피어있는 배롱나무의 꽃(백일홍)이 아름답다.

     

     

     

     

    대릉원

     

     

     

     

     

    오죽(검은대나무)

     

     

    대릉원 안의 배롱나무(백일홍)

     

     

    첨성대

     

    27대 선덕여왕 때 천문관측과 관련한 건축물로 2층 기단 위에 30cm 높이의 돌 27단을 쌓아 올렸고, 꼭대기에 우물 정(井)자 모양의

    사각형 돌을 짜 올렸다. 구조와 구성은 물론 돌 하나에도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맨 위 정자석의 길이가 기단부 길이의 꼭 절반

    이라 여러가지 과학적 신비함이 가득하다

     

     

     

     

    계림(鷄林) 

     

    첨성대와 월성(月城) 사이에 있으며, 겨우 김씨의 시조 알지(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탈해왕(脫解王)

     때 호공(瓠公)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나뭇가지에 금궤(金櫃)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 아이가 나왔다하여 성(性)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始林), 구림(鳩林)이라 하던 디 숲을 계림(鷄林)으로 부르게 되었다.

     

     

     

     

     

    석빙고

     

     

    동궁과 월지(안압지)

     

    안압지 옆의 연꽃

     

     

    '일탈 > 여행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도 여행  (0) 2016.10.22
    손자와 배타고 일본을 ~  (0) 2015.02.27
    일본 여행사진  (0) 2015.02.26
    김해 봉황동 유적지  (0) 2014.07.06
    영주 부석사  (0) 2014.06.20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