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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여행
    일탈/여행사진 2016. 10. 22. 14:50

    국립제주박물관

    인류 최초의 획기적인 발명품인 토기는 신석기시대의 지표 유물이다. 12천 년 전쯤 시작된 농업혁명으로 농경과 함께

    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수확물을 저장, 운반하거나 조리하는 도구가 필요해졌고, 진흙에 물을 부어 반죽한 뒤 모양을 빚어

    불에 굽는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토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제주도 한경면

    고산리 선사유적지에서 나왔는데, 1만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제주민속박물관

    제주도 사람들의 옛날 생활상과 생활도구, 마을 구조와 먹거리 및 해양생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비자림(榧子林)

    주목과의 상록교목인 비자나무가 있는 비자림에는 식물분포 260여종(목본류 120여종, 초본류 140여종)

    동물분포 156(조류 25, 곤충류 131)이 서식하고 있다.

     

     

     

    천년을 살고 있는 비자나무

     

     

    제주절물자연휴양림 

    제주시 봉개동 화산 분화구 아래 1997723일 개장한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은 총 300ha의 면적에 하늘을 찌를 듯한

    40~45년생 삼나무가 수림의 90%이상을 차지하고,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해풍과 조화로 한 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삼나무는 속성수로서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 감귤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풍림이 목적이었다. 이곳은 지역주민이 심어 자연 휴양림으로 개발되면서 안락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 휴양림 입구에는 '왕방강 잘 고라 줍서' 라고 순수 제주도 말을 써 놓았다. 뜻은 '와서 보고 가서 잘 이야기 해 주세요'.

     

     

     

     

     

     

    넙적 사슴벌레 이건 진짜 살아 있는 거 ~~

     

     

    제주 4·3 평화공원

    제주 4·3 사건(濟州四三事件)19473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43일 발생한 봉기 사태와

    그로부터 19549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도 별도동 진지동굴 입구에서 당시 무장대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군사재판을 거치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처형돼 암매장 되었던 유해 5구가 발굴됐다고 한다. 한을 안고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제주도 자장가

    웡이자랑 웡이자랑 우리아기 자는소리 놈의아기 우는소리 우리 어진이 단밥먹엉 혼저 재와줍서 웡이자랑 웡이자랑

    수덕좋은 할망자손 단밥먹엉 단잠 재와줍서 웡이자랑 웡이자랑 자는 건 잠소리여 노는 건 놈 소리여 웡이자랑 웡이자랑

    어진이여 순덱이여 웡이자랑 웡이자랑 단밥먹엉 단잠 재와줍서 자랑하져 자랑하져 웡이자랑 웡이자랑 어멍도

     자들리지 말곡하라 할마님 자손 단밥 먹엉 단잠 재와줍서 금제동아 옥제동아 혼저 누웡자라 웡이자랑 웡이자랑

     

    1949년 제주 봉개동 지역에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벌어지던 1월6일, 변방생(당시 나이 26세)과 그의 두살배기 딸은

    거친오름 북동쪽 지역에서 피신도중 토벌대가 쏜 총에 맞아 희생되었다. 후일 행인에 의해 눈더미 속에서 딸을 안고

    웅크린 자세로 죽은 이 모녀의 시신이 발견 되었다. 현재 이 모녀상(母女像)은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이 두 생명의넋을

    달래고자 발견 당시 모습 그대로 만든 것이다.

     

     

     

     삼양선사유적지

    제주 사적 제416호인 삼양선사유적지는 기원전, 1세기를 중심으로 한 시기의 집자리 약 230여기가 확인된 대단위 마을

    유적이다. 마을 안에서는 크고 작은 집자리, 창고, 저장공, 야외토기 요지, 불땐자리, 마을공간을 구획한 돌담과 배수로,

    폐기장, 조개무지, 고인돌 등이 확인되었다.

     

     

     

    이 고인돌은 도련동 689번지 농지에 있던 것을 20055월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고 한다. 고인돌 상석의

    크기는 길이 323cm, 296cm, 두께 40~80cm 이다. 무덤 위에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고인돌을 만들었다.

     

    이 부족장 움집은 남북 길이 600cm, 동서 길이 600cm이고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대형의 저장용 토기와

    중국제 옥환, 석제 칼자루 끝장식, 돌도끼 등과 불에 탄 곡물들이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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