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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88억 원' 피카소 그림
    쉼 터/토막 상식 2010. 5. 8. 08:51

    “나는 피카소인데 우리 함께 대단한 일을 해 보자” 17세 처녀인 마리 테레즈 월터(1901~1977)를

    보고 반한 피카소가 처음 건넨 말이다. 피카소의 그때 나이는 40대 중반, 피카소는 이후 6개월이나

    집요하게 그녀를 쫓아다녀 자신의 모델로 만들었다. 피카소는 평균 10년을 주기로 동거녀를 7명이나

     

    바꿨다.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피카소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피카소는 이 와중에 정식 결혼도

    두 번 했다. 네 번째 만난 상대가 바로 이 마리 테레즈다. 그녀는 피카소의 여인들 중 최고 청순한

    이미지의 여성으로 꼽힌다.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 영감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는 피카소와의

     

    사이에 딸 마야도 낳는다.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를 정말 사랑한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피카소는 딸을 낳을 무렵부터 다른 여성을 따라다녔다. 다섯 번째 여인인 프로급

    사진사 앙리에트 마르코비치다. 마리 테레즈는 결국 피카소와 헤어진다. 이별 후에도 피카소 주변을

     

    항상 맴돌았다. 그녀는 “저승에서도 그를 보살펴야 한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그녀도 피카소가

    죽은지 4년 뒤 목 메달아 죽었다. 피카소 작품이 크리스티 뉴욕 경매소에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천188억 원(1억 640만 달러)에 낙찰됐다. 마리 테레즈를 모델로 한 ‘누드, 녹색 잎과 앞가슴’이란

     

    피카소 전성기인 1932년 그림이다. 미국의 한 미술품 수집가 부부가 1951년 피카소에게서 1만

    9천800 달러에 구입했던 것이었다. 화가가 살아서 부와 명성을 거머쥐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평생

    가난으로 고생만 하다 간 우리나라 최고 화가 박수근이나 이중섭이 그 예다. 하지만 피카소는 부뿐만

     

    아니라 명성도 한꺼번에 이뤘고, 사후에도 그의 작품은 최고가를 기록한다.

                                                                                                    이동걸 부산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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