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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신과 변신
    쉼 터/잠깐 쉬며.. 2009. 9. 24. 22:15

    조선조 황희 정승은 한없이 어질고 청렴했지만 강직함 또한 갖고 있었다. 아들인 항치산이

    호조판서 때 새 집을 지었을 때와 6진을 개척한 김종서가 거만한 태도를 보였을 때 그들을

    크게 꾸짖은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고려 왕조에서 벼슬을 한 그는 조선조 태조 때부터

     

    4대의 임금을 모시고 세종 대에 이르러 18년 동안 영의정을 지냈다.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두 왕조를 섬기는 불충을 행했다. 자칫 훼절자로 치부될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소신과 강직함

    이었다. 그는 여러 번 좌천과 면직을 겪었고 심지어 양반에서 서인으로 강등되고 유배까지

     

    당했으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조선 초기 세종 대를 이끈 황희와 비견되는 인물은 조선 후기

    정조 때의 채제공일 것이다. 영조시대 남인의 대표인물이었던 채제공은 삭직과 낙향, 재임용

    반복했다. 그런 그가 뜻을 펴기 시작한 것은 정조 12년인 1788년 우의정에 발탁되면서부터,

     

    3년 뒤 그는 조선 최초의 시장 자유화 조치로 불리는 신해통공을 단행했다. 시전상인들이 시장

    을 독점하는 금난전권을 철폐애 자유로운 상업할동을 보장한 것이다. 이 조치는 이후 상업의

    번성에 큰 역할을 했다. 황희 정승이 그랬듯이 채제공 역시 소신을 위해서는 자신의 안위를 돌

     

    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초기 한승수 씨가 총리가 되면서 역대 정권을 넘나드는 그의 이력이

    큰 논란이 됐었다. 이번에는 그의 뒤를 이어 한때 열린우리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총리수보에 내정돼 인사청문회를 치르고 있다. 소득세 탈루와 공무원법 위반,

     

    논문 중복게재와 부인의 위장전입에다 병역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실망감이 적지 않다. 이보다

    더 낙담스러운 건 그가 소신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세종시 건설에 반대하더니 이번엔 4대 강,

    감세, 한미FTA에 대한 입장을 달리했다. 이 정도면 몸만 바꾼 게 아니라 마음조차 바꾼 총체적

     

    변신인 셈이다. 물론 그가 총리가 된 뒤 얼마나 의미있는 진전을 이뤄낼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나, 그전에 시세에 따라 변신하며 권세만을 쫓아간 사람들의 종말이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는

    역사의 교훈만은 깊이 새겨야 할 듯하다.

                                                                                       박의봉 국제신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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